[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내가 좋아하는 로커

입력 2016-10-05 14:13 수정 2016-10-0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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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는 장인[시아버지]의 나룻[수염/턱] 밑에서도 긋는다”는 속담이 있다. 가을엔 여름 장마처럼 비가 많이 오지 않고 곧 그친다는 뜻이다. 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해학적으로 풀어낸 선조들의 표현력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지난 주말 내린 비로 가을이 숲에 들녘에 하늘에 바람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편에/ 빨간 석양이 물들어 가면/ 놀던 아이들은 아무 걱정 없이/ 집으로 하나 둘씩 돌아가는데/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저 석양은 나를 깨우고/ 밤이 내 앞에 다시 다가오는데….” (전인권의 ‘사랑한 후에’) 가을 저녁, 생각이 익으면 절로 떠오르는 노래다. 전인권이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알 스튜어트의 ‘베르사유 궁전(The Palace Of Versailles)’을 리메이크한 곡으로, 포효하는 듯한 그의 창법과 한 소절 한 소절 가슴에 꽂히는 노랫말에 진한 전율을 느낀다.

돌출 발언, 마약 등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전인권을, 필자는 가수 중 가장 좋아한다. 1980~90년대 질곡의 시대에 자유를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는 새처럼 그는 맘껏 질러댔다. 거친 그의 목소리는 억압받아 암울했던 그 시절 청춘들에게 큰 힘이 됐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중략)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고 희망을 노래했던 그는 진정한 로커요, 록의 전설이다.

‘rocker’는 록커, 로커, 락커, 라커 등 여러 형태로 쓰여 언중을 혼란스럽게 한다. 나라 밖에서 온 ‘들온말(외래어)’인 탓이다. 그 나라의 발음에 충실한다는 외래어표기법의 대원칙에 따라 로커 하나로만 써야 한다. 자물쇠가 달린 서랍이나 반닫이 따위를 이르는 ‘locker’도 우리말로 표기하면 로커다. 이에 국립국어원은 locker는 사물함, 개인 보관함 등으로 순화해 쓸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locker room’은 어떻게 표기해야 할까? 당연히 ‘로커 룸’으로 써야 하겠지만 이 말의 바른 표기는 ‘라커 룸’이다. 이미 굳어진 들온말은 관용을 인정해 적어야 한다는 외래어표기법 제1장 5항을 따른 것이다. 언중을 위한다는 관용 때문에 언중이 더욱더 혼란을 겪고 있는 셈이다.

원칙은 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이다. 그런데 실제 말글살이에서 외래어표기법은 상황에 따라 왔다 갔다 해 원칙이라 부르기조차 부끄럽다. 외래어는 의미만 통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잘못된 표기를 써대는 기자들도 문제다. 마켓팅(marketing), 팩키지(package), 맛사지(massage), 브릿지(bridge), ‘헷지(hedge), 엣지(edge)… 신문지면이나 방송 자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류들이다. 눈과 입에 익숙하지 않아도 마케팅, 패키지, 마사지, 브리지, 헤지, 에지가 바른 표기다. 들온말도 원칙에 맞게 써야 언어생활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

며칠 전 공중파TV 음악방송에 전인권이 출연해 감동을 선사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청춘 등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잠시나마 위로받았을 것이다. 환장하도록 아름답고 푸른 시월에 듣는 그의 묵직한 목소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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