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조지훈(1920~1968)의 ‘지조론’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가 지조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말은 다음의 한 구절이다. ‘기녀(妓女)라도 늘그막에 남편을 좇으면 한평생 분 냄새가 거리낌이 없을 것이요. 정부(貞婦)라도 머리털 센 다음에 정조를 잃고 보면 반생(半生)의 깨끗한 고절(苦節)이 아랑곳없으리라. 속담에 말하기를, 사람을 보려면 다만 그 후반(後半)을 보라.’ 하였으니 참으로 명언이다,”
사람은 죽고 난 뒤가 중요하다. 바로 개관사정(蓋棺事定), 죽은 뒤 관 뚜껑을 덮고 일을 정하게 된다. 개관논정(蓋棺論定)이라고도 한다.
개관사정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말로도 쓰인다. 오랜 유랑 끝에 쓰촨[四川]성의 어느 오지에 정착한 두보는 그곳으로 유배된 친구의 아들 소혜에게 ‘군불견간소혜’(君不見簡蘇徯)라는 시를 보냈다. “그대 보지 못했나 길가에 버려진 연못을/그대 보지 못했나 그대 앞에 쓰러진 오동을/오동은 죽은 등걸로도 거문고를 만들고/한 섬의 오래된 물에 교룡이 숨어 있다네/사나이 죽어 관 뚜껑을 덮고 나서 성패를 말할 수 있나니/그대 다행히 아직 늙지 않았거늘/어찌 산 속에서 불우함을 탓하는고/심산궁곡은 살 곳이 못 되리니/벼락과 도깨비에 광풍까지 겹쳤음에랴. ”[君不見道邊廢棄池 君不見前者摧折桐 百年死樹中琴瑟 一斛舊水藏蛟龍 丈夫蓋棺事始定 君今幸未成老翁 何恨惟悴在山中 深山窮谷不可處 霹靂魍魎兼狂風] 용기를 잃지 말고 노력하라는 충고였다.
그러나 관 뚜껑을 닫고 난 뒤에도 살아서 저지른 일로 인해 부관참시(剖棺斬屍, 관을 깨뜨려 시체를 베는 것)의 추형(推刑)을 당한 일도 있었으니 관 뚜껑을 닫은 뒤에도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애국지사들 중에도 스스로 만절(晩節)을 훼손해 길이 오명을 남긴 경우가 있으니 안타깝다. fused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