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나의 돛단배 이야기

입력 2015-04-28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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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준 그레이 웨일 보팅 서플라이(GRAY WHALE BOATING SUPPLY) 대표

대학 졸업을 한 해 앞두고 두 친구와 작은 돛단배로 연안일주 항해를 떠났던 때 일입니다.

“쿵쿵”

머리 위로 들려오는 소리에 잠을 깨어 주위를 살펴보니 새벽부터 일어난 친구 놈이 갑판 위를 부산스레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잠에서 깬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슬쩍 실눈을 떠서 살펴보니, 지난밤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툰 것으로 여전히 기분이 풀리지 않은 듯한 눈치입니다. 십 여분을 자는 척 버티다가 마지못해 침낭을 걷고 선실 밖으로 나와 느슨해진 배의 부품들을 조여 주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기분이 덜 풀린 친구 녀석은 제가 선실 밖으로 나오니 슬쩍 자리를 피해 설거지 거리를 들고는 항구 한 켠 수돗가를 향해 걸어가네요.

배를 타고 여행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마주하곤 합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 의견 차이로 다투고 풀어지기를 반복하지만 그래도 보통 때는 하루 자고 일어나면 피차 기분이 풀리곤 했었는데, 그날따라 친구 녀석이 단단히 골이 난 모양입니다.

배를 손보고 있으니 설거지를 마친 친구 녀석이 어디서 났는지 냄비 한 가득 꽁치를 담아 돌아오는 것이 보입니다. 방금 조업을 마치고 돌아온 어선 선장님께서 젊은이가 항구를 배회하는 것을 보고는 꽁치를 나누어 주신 모양입니다. 속으로는 만세를 불렀지만, 겉으로는 퉁명하게 그러거나 말거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배 정비를 이어갑니다.

“야, 아침이나 먹고 해라”

그렇게 서로 말도 안하며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에서 꽁치를 다듬던 친구 녀석이 어느새 아침 식사를 한 상 기막히게 차려서는 작업을 하고 있는 저희를 부릅니다. 서로 그렇게 골이 나있으면서도 밥상은 이렇게 기막히게 차려주는 녀석이나, 부른다고 또 쪼르르 가서 맛있게 먹는 저희들이나 참.. 한 배를 탔다는 말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봉고차 정도 되는 크기의 작은 돛단배에 몸을 싣고 다 큰 사내 셋이 부대끼며 항해를 이어 온지 60 여일이 지났을 때입니다. 바람이 잦아들지 않아 바다가 거칠기는 하지만 이제 며칠만 더 항해하면 이 여행의 목적지인 독도 도착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혈기 왕성하던 20대, 돛단배로 연안일주를 하던 그때 저와 친구들은 어느덧 각자 가정을 꾸리고 바쁘게 살아가는 30대 아저씨들이 되었습니다. 좁디좁은 배에서 다투기도 하면서 매일같이 마주하던, 조금은 지겹기도 했던 얼굴들이 이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그리워지고는 합니다. 점점 복잡하고 어려워져 가는 사람 관계와 생활 속에, 추억 할 수 있는 시간이 있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달아갑니다. 그때, 저희 셋 중 한 명만이라도 여행하는 것을 머뭇거리거나 중간에 포기 했더라면 지금 저에게 힘이 되어주는 추억도 생길 수 없었겠지요.

제 딸아이가 자라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되면 이 이야기를 해주게 되겠지요.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지금을 놓치면 절대 돌아오지 않는 시간과 사람들이 있는 거라고. 가끔은 너무 망설이지 말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과 사람들을 따라 가보는 것도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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