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노동의 분배 개선이 불균형 해법 출발점”

입력 2014-12-08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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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ILO 부사무총장 정책특보 인터뷰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부사무총장 정책특보를 만난 지난 5일은 마침 ILO에서 매년 발간하는 ‘국제 임금 보고서(Global Wage Report)’가 나오는 날이었다.

이번에 나온 보고서 내용도 최근 몇 년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해서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그다지 유리하지 않은 쪽으로. 지난 2013년 기준 전 세계 임금 상승률은 2.0%로 전년보다 0.2%포인트 떨어졌다. 노동 생산성이 좋아지는 속도는 임금 상승 속도를 넘어섰다. 1990년대 이후 계속 목도했던 추세 그대로다.

근로자가 일한 댓가로 받는 임금이 노동 생산성이 높아지는 만큼 늘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건 기업이 경제 활동을 해서 남기는 것을 개인보다 기업이 더 많이 가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이 이렇게 번 돈을 투자나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쓴다면 개인의 소득도 균형있게 늘어나고 소비지출이 늘면서 다시 기업이 살찌는 선순환이 일어날텐데 이 순환 구조 한 곳이 막히고 있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불평등(inequality)이 이러한 노동 문제 때문에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임금과 고용이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당연히 해법은 임금과 고용이 균등하게 분배되도록 하는 것. 이상헌 ILO 정책특보도 인터뷰에서 이 점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부사무총장 정책특보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해야 합니다. 때문에 번 돈이 많다고 해도 그걸 투자나 일자리 창출에 다 쓰지 않으려 할 수 있죠. 그렇다고 그걸 그냥 두면 되는 건 아니라는 얘깁니다. 기업이 그런 책임을 지지 않으면 사회적, 경제적 여파가 크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죠. 그걸 조정하기 위해 법제와 규제가 필요한 겁니다. 결국은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얘기죠. 또 이것은 한 기업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수많은 기업들에 동시에 적용되는 문젭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단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서 규제가 더욱 필요한 것이고, 그걸 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겁니다.”

이 얘기, 많이 익숙한 얘기란 생각이 든다. 올해 초 전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켰던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가 자신의 책 <21세기의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에서 한 얘기와 맥이 닿아 있다.

토마 피케티는 소득 불평등은 자본이 벌어가는 몫이 노동이 가져가는 몫보다 큰 데서 비롯된다고 봤다. 그리고 돈이 돈을 버는 속도와 비중을 쫓아갈 수 없는 이 부분을 끊는 건 정부의 몫으로 봤다. 이른바 자산세(Wealth Tax)가 해법으로 제시됐다. 전 세계적으로 자본이 이동할 때마다 어마어마한 세금을 물리자고 했다. 각국이 달리 세금을 물리면 덜 물리는 쪽으로 돈이 향할 수밖에 없으니 그렇지 못하도록 막는 데엔 전 세계의 동조가 필요하다고 해 ‘전 세계적 물의’(?)를 일으켰지만 방향성에 대해 동의하는 반향도 컸다.

국제기구인 ILO에 몸 담은 상황에서 보는 한국 상황은 어떨까. 이상헌 정책특보는 현재 한국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대(對) ‘정규직 고용 유연성’이라는 프레임 대결이 어느 때보다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업과 노동과의 관계 개선에 초점을 두는 것일 수 있다는 조언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기업과 노동간의 분배 문제, 그러니까 기업이 노동자보다 훨씬 더 많이 가져가는 것이 심화되는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런 뒤에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어떻게 좀 더 효율적으로 나눠갖는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과 노동의 관계에서 노동이 가져갈 부분의 합을 너무 적게 만들어 놓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로 사안을 좁혀 버리면 그렇게 생산적인 논의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말한 정규직 고용 유연성 강화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에 대한 매우 우회적인 비판인 동시에 이 김에 기업과 노동의 분배 문제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에 사회가 천착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읽혔다.

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틀로 좁혀서 한 쪽이 양보를 하라든지 하는 방식 말고 생산적인 논의가 필요합니다”라면서 “사회적 담론을 이 기회에 확대해 전체적인 차별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비단 임금 격차만이 아니라 안전 장비의 차이 등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이런 기본적인 노동 인권의 문제는 기업이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북유럽 나라들의 경우 이것이 아주 잘 갖춰져 있는 편인데 그것은 근로자, 노동에 대한 생각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는 “노동이란게 별 것이 아니라 한 시민이 한 사회에 기여하면서 살아가는 방식이 바로 노동인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북구에서 그런 인식이 뿌리내리고 있는 편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차별, 기본적인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일터뿐 아니라 사실 어디서도 일어나선 안 되는 것이죠.”라고 했다.

미국을 위시해 우리나라에서도 최저임금 인상 논의가 정치적 이슈화하는 것이 오히려 경제적으로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심각해지고 있는 소득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선 빈곤층의 임금을 높여주는 방식을 택해야 합니다. 임금 근로자의 경우 최저임금을 높여주는 방식이 될 수 있겠죠. 한국은 국제적 수준에서 높지 않은 편이라 조금 더 올릴 여지가 있구요. 하지만 이 때문에 퇴출되어야 할 한계 기업을 살리고 해고를 막는 것이 경제 동학적인 과정에선 오히려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죠. 오히려 한계 기업은 퇴출되고 해고자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쪽이 훨씬 경제적으로는 도움이 되겠죠.”

그는 산술적인 분배 논의나 정치적인 대결 구도로 접근하면 노동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으니 모든 노동 문제의 출발점을 기업과 노동간의 관계로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원칙, 그리고 기업과 정부의 책임감을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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