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당시 미국은 남한에서, 소련은 북한에서 정치적 이해를 최대한 실현할 수 있는 체제를 수립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선 둘 다 점령군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 지사와 윤 전 총장의 설전은 오히려 정치적인 입지에 맞게 해석하는 정쟁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이 소장은 “우파에선 미군은 해방군, 소련은...
역사평론가 이덕일은 ‘단일민족’을 이렇게 평했다. “중국의 한족은 우리를 동이로 분류했는데 여기에는 말갈·몽골·숙신·선비족 등이 모두 속해 있었다. 조선 후기 극단적인 사대주의 유학자들이 다른 동이족을 오랑캐로 몰면서 우리를 한족과 같다고 주장한 것이 소중화 사상이다. 여기에서 허구적인 단일민족론이 나왔다. 우리는 수천 년 동안 다민족 사회였고...
조선실록에 바탕을 둔 작가 이덕일의 집필이 시작됐다.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1:태조’(다산초당)는 역성혁명을 이뤄낸 태조의 일대기와 혁명의 의미를 풀어낸 책이다. 앞으로 계속될 총 10권의 소개글이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조선왕조 518년 동안 모두 27명의 임금이 있었다. 평균적으로 19년 동안 재위에 있었는데 이들 가운데 후대의 후한 평가를 받는 왕은...
이덕일 역사학자·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조선총독부 직속의 조선사편수회는 중국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운 한사군(漢四郡)의 위치를 한반도 북부라고 확정지었다. 한국사는 식민지의 역사로 시작되었으니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은 역사적 귀결이라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문제는 해방 후에도 친일청산에 실패하면서 이런 식민사관, 즉...
이덕일 한가람연구소 소장
필자는 90년대 초반 중국 서점에 처음 갔을 때 ‘사기(史記)’ ‘한서(漢書)’ 등이 문고판으로 판매되는 것을 보았다. 주로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발간했는데, 특이한 것은 지금 중국에서 사용하는 간체자(簡體字)가 아니라 옛날부터 쓰던 번체자(繁體字) 서적들이었다. 이런 사료들만 간체자가 아니라 번체자로 간행하는 데서 고대 사료를...
이 과정에서 윤내현, 신용하, 이덕일, 복기대는 졸지에 박사학위를 가진 사이비 역사학자로 일반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필자는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학자로서 3편의 논문을 정독했다. 이들 논문은 학문적 정치성(精緻性)과 논리의 정연성이 부족하며, 자신들의 주장에 반대되는 1차 사료와 선행연구 결과를 배척하고 있어 논문으로서의 요건을...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장관이 상임대표로 나섰고,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와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 등 10명이 공동대표로 자리했다.
허성관 상임대표는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 1945년 광복 이후 온 몸을 바쳐 나라 찾기에 나선 분들이 개국공신임에도 1970년까지도 숨죽이면서 살았다. 광복 후 법적으로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했고...
하북성 현지 기록은 이덕일, 심백강 등 다수 학자들이 입증했다. 그런데 이병도를 계승한 현 역사학계에서 주장하는 황해도 수안현은 이 세 가지 조건 중 한 가지도 일치하는 게 없다. 당대 기록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평양 낙랑설을 주장하기 위해 일제는 대규모 가짜 낙랑 유물을 만든 것이다.
중국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통해 고구려...
유배지에서의 고난을 고통으로만 끝내지 않고, 중앙 권력 내에서는 이루어낼 수 없는 또 다른 성과로 매듭지었던 이들의 선비정신과 시대정신을, '정도전과 그의 시대', '조선 왕을 말하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등 다수의 역사 베스트셀러를 낸 역사저술가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강연을 통해 되새겨 보았다.
이 강의는 3(수)일과 4일(목) 밤 11시 10분...
이사로는 김희선 전 국회의원, 라종일 전 주일·주영 대사, 박정신 숭실대 교수,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이철휘 전 제2작전사령관, 장정수 전 한겨레 편집장, 허성관 전 행정부장관 등이 있다.
한민족평화통일연구소는 30일 서울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창립식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창립 취지는 우리의 민족사를 식민사관의 굴레에서 벗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