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복지재단은 복지 개념도 없던 1928년 목포 양동교회 전도사 윤치호가 설립한 호남에서 가장 오래된 사회복지시설 '공생원'을 뿌리로 한 곳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김건희 여사와 함께 전남 목포시 공생원 광장 일대에서 열린 기념식에 찾았다. 기념식을 찾은 윤 대통령은 축사에서 공생원에 대해 "윤치호 전도사님으로부터 시작된 이곳 공생원은 부인이신...
윤치호·윤학자 기념관을 돌아본 윤 대통령 부부는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재단 관계자들과 만나 격려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공생복지재단은 1928년 목포 양동교회 윤치호 전도사가 설립한 호남에서 가장 오래된 사회복지시설이다. 6·25 전쟁 당시 윤 전도사는 실종됐고, 그의 부인인 일본 여성 다우치 치즈코(한국명 윤학자) 여사가 56세로 사망할 때까지...
세종대왕의 셋째 왕자 안평대군의 집터인 무계정사가 바로 인근에 위치해있으며, 조선 말기부터 대한제국 시기 문신이자 언론인이었던 윤치호의 별장인 부암정도 지근거리에 위치해있다.
석파정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을 자랑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권력암투가 담겨 있다.
흥선대원군의 별장이기 이전에 안동김씨 세도가 김흥근의 별서였던 석파정과 관련...
“조선인은 일반적으로 10퍼센트의 이성과 90퍼센트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구한말과 일제치하에서 지식, 명망, 재력을 겸비한 윤치호가 남긴 일기를 정리한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산처럼)에 실린 문장이다. 이 문장은 고종의 죽음을 두고 야단법석을 떠는 조선인에 대한 평가다. 한 인물이 남긴 영문 일기가 이토록 방대한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을 수...
조선 선조 때 문인 윤두수의 후손이고 대한제국의 관료 윤웅렬의 종손이며, 윤치호의 종질이다. 윤치왕, 윤치창은 그의 당숙이었고, 윤치영은 그의 숙부였다.
영국 에든버러대를 졸업한 그는 8·15광복을 맞자 미 군정청 농상국 고문에 올랐다. 이어 한영협회장, 민중일보사 사장 등을 지낸 뒤 1948년 정부가 출범하자 초대 서울시장에 발탁됐고, 다음 해에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저항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 최초의 TV 일일연속극인 ‘눈이 나리는데’ 매일 저녁 7시40분부터 20분씩 반영
영남지방에 50년만의 대폭설
국립대학설립안 반대, 동맹휴학 시작
서재필과 함께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이끌었던 윤치호 사망
병자호란 발발
조선총독부, 국세조사결과 10월 1일 현재 조선인구는...
이날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애국가의 작사가가 윤치호와 안창호, 두 사람으로 좁혀진 가운데 각각 이들이 애국가 작사가라고 주장하는 증거가 전파를 탔다.
윤치호가 애국가 작사가로 추정되는 이유는 바로 윤치호가 과거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발견된 문서 기록에서 애국가의 가사를 친필로 적은 내용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윤치호의 가족은 이를 근거로...
그동안 애국가 작사가 리스트에는 윤치호, 안창호, 김인식, 최병헌, 민영환, 그리고 윤치호와 최병헌 합작설 등이 올랐다.
그러나 크게는 윤치호설과 안창호설이 맞섰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11대 2로 윤치호 단독 작사설이 유력했으나 만장일치가 아니라는 이유로 작사자 미상으로 판단했다.
애국가 작사자가 윤치호라는 주장을 하는 전문가들은 1955년...
애국가 작사가 명단에는 그동안 윤치호, 안창호, 김인식, 최병헌, 민영환의 이름과 함께 윤치호와 최병헌 공동작업 등이 거론됐지만, 윤치호설과 안창호설이 팽팽하게 맞섰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11대 2로 윤치호 단독 작사설을 유력하게 봤지만, 만장일치되지 않아 작사자 미상으로 판단했다.
제작진은 "일설에는 친일파로 비난을 받던 윤치호가 애국가의...
교회 강연에서는 독립협회 주도자에서 친일파로 전향한 윤치호의 말을 인용해 하나님이 이 나라를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고, 남북을 분단시켰다는 궤변을 언급했다. 그는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 지는 DNA를 가진 민족에게는 시련이 필요하다는 윤치호의 망언도 거론했다.
도덕성에 있어서도 여러 결격 사유가 드러났다.
관훈클럽 신영기금 이사장 시절...
또한 그가 자주 인용하는 윤치호는 친일파로 변절한 인물임에도 그의 일기를 자주 언급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친일파의 일기라면 비판적으로 인용해야 하지만 최소한 나는 그런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런 ‘특이한’ 역사관을 개인이 갖고 있는 것이야 자유겠지만, 총리의 역사관이어서는 곤란하다. 더구나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의 극우화 경향에 대항해...
문창극 후보는 "이 사람(윤치호)은 끝까지 믿음을 배반하진 않았다. 비록 친일은 했지만은 나중에 기독교를 끝까지 가지고서 죽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사람은 영어로 일기를 쓰는 사람이다. 1881~1882년 그때에"라며 "그러니 우리는 다 가서 죽어야지. 우리는 사실 다 죽어야한다"고 덧붙였다.
문창극 후보 소식을...
애국가 작사자 윤치호
지금까지 독립운동가 또는 작자 미상으로 알려진 애국가 가사가 친일파 윤치호의 가사라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의 대표 혜문 스님은 16일 "한글 붓글씨로 애국가 1절부터 4절까지 쓰고 '1907년 윤치호 작'이라는 서명이 붙은 문서 원본이 미국 에모리대학에 보관돼 있다"고 밝혔다.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