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와 협업해 서세옥, 손재형, 송영방 등 성북을 예술 터전으로 삼고 활발하게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 18점을 전시한다.
유하정은 시냇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팔각모양의 정자로 교육체험 장소로 활용한다. 한국전통 음식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과 와인 강좌가 매주 목요일 운영된다. 외부 잔디마당과 연결돼 있는 청천당은 실내·외 공간을 활용한 전통혼례...
소전 손재형은 "우리 미술문화를 바로잡고 서예문화를 새롭게 전개하자"며 '서예'라는 용어를 만들고, 중국의 '서법', 일본의 '서도'와 차별화를 꾀한다.
'미술관에 書(서): 한국 근현대 서예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1969년 개관한 이후 처음 마련한 서예기획전이다. '한국 현대서예가 1세대' '국전 1세대'로 불리는 12명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최근 주목을...
한국 현대조각의 선구자 김종영(1915~1982), 단색화의 거장 윤형근(1928~2007), 서예가 손재형(1903~1981) 등 추사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고, 추사의 미학을 이어받은 작가들의 작품이다.
큐레이터는 “추사는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했다. 그는 “추사를 서예 장르에 가두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의 글은 학문이고 예술”이라며 “‘계산무진’과 ‘무쌍·채필’에서 보듯...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를 손에 넣기 위해 불태웠던 열정으로 조선시대 서화의 정수(精髓)를 수집한 손재형의 컬렉션도 그의 생전에 다 흩어지고 지금은 이름으로만 남아 있다.
미술품은 명품일수록 권력과 돈을 좇아 유랑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권력과 돈은 부침하는 것, 시운이 다하면 사라지듯 컬렉션도 흩어지는 운명을 타고나는 것일까? 컬렉터도 자신이...
광복 후에는 유희강 손재형 김충현 김응현 임창순 이가원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977년 홀연히 LA로 이민을 떠난다. 이후 도시의 은자가 되어 평생 서예를 낙으로 살았는데 올해로 100세를 맞은 그의 청고한 작품이 인사동 작은 화랑의 벽면에 빼곡히 걸려 있는 것이다.
엽서의 두어 배 크기밖에 안 되지만 어느 대작보다 더 기품이 있고 격조가 높은 작품도 있다. 실지로...
한국에서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그냥 ‘서(書)’라고만 했다가 광복 후, 서예가 손재형(孫在馨)이 일제강점기에 사용한 서도라는 말을 배척할 양으로 서예라는 말을 제안한 것을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다.
서예, 서법, 서도는 용어는 달라도 사실상 추구하는 예술성은 같다. 지금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 문화의 정수인 서예를 한, 중, 일 3국이 함께 노력하여 서방 세계에...
소전 손재형(1903~1981)은 서예 발전을 위해 힘쓴 서단의 원로였고, 끈질긴 노력 끝에 추사의 ‘세한도’(국보 180호)를 일본에서 되찾아온 분이다. 그런 그가 자유당 민의원(1958~1960), 박정희 대통령 선거대책위원회 특별고문(1967)을 거쳐 제8대 의원(1971~1975)이 된 경력을 많은 사람들이 옥에 티로 여기고 있다. 서예의 길과 정치의 길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서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