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는 주(周) 문왕과 주공에, 묵자(墨子)는 우임금, 맹자(孟子)는 요·순 임금, 도가(道家)들은 복희씨(伏羲氏)와 신농씨(神農氏)를 논거로 제시해 각자의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이들 대부분은 모두 복고적(復古的)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법가는 시대 변천에 따른 사회적 요구를 파악하고, 그 요구에 따라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고...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아들 무왕(武王)은 포악한 은(殷:商)나라 주왕(紂王)을 정벌하려고 군대를 이끌고 황허강(黃河)을 건너 은나라의 도읍으로 진격했다. 무왕이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려고 단결하여 싸움에서 공을 세우자고 발표한 태서에 나온다. “주왕은 많은 군사와 관리를 거느리고 있을지라도 마음을 한데 합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다 함께 일치단결하여...
“문왕과 무왕의 도(道)가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고 사람 중에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그중 큰 것을 기억하고, 현명하지 못한 사람도 그중 작은 것을 기억합니다. 문왕과 무왕의 도를 지니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어찌 배움이 없으시겠습니까? 그리고 어찌 정해진 스승이 있으시겠습니까[莫不有文武之道焉 夫子 焉不學 而亦何常師之有].”
☆ 시사상식...
☆ 고사성어 / 복수불반(覆水不返)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스승 강태공(姜太公) 여상(呂尙)은 어려운 가정 형편을 돌아보지 않고 책에 파묻혀 살았다. 이를 견디지 못한 그의 아내는 친정으로 달아났다. 여상이 재상이 되자 아내가 찾아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떠났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돌아왔다”라고 말했다. 여상은 그릇의 물을 마당에...
“소인은 돌아가신 아버지 문왕의 명을 받아, 새벽부터 밤까지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늘과 큰 땅에도 제사를 지냈소. 이제 그대들과 함께 하늘의 벌하심을 이루려 하오. 하늘이 백성들을 가엾게 여기시니, 그대들은 바라건대 나 한 사람을 도와 영원히 온 세상을 맑게 하시오. 때가 되었으니 잃어서는 아니 되오[時哉弗可失]” 이후 발은 B.C. 222년 주나라 무왕...
초(楚)나라 문왕(文王)이 신(申)나라를 치기 위해 등(鄧)나라를 지날 때 임금인 기후(祁侯)는 ‘내 조카가 왔다’며 반갑게 맞이했다. 세 현인(추생, 담생, 양생)이 “머지않아 저 문왕은 반드시 등나라를 멸하고 말 것이옵니다. 하오니 지금 조치하지 않으면 훗날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옵니다”라고 진언했으나 기후는 듣지 않았다. 예언대로 10년이 지나 문왕은...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기만 하고 느슨하게 풀어주지 않는 방법이나, 반대로 활시위를 느슨하게 풀어주기만 하고 팽팽하게 당기지 않는 방법은 문왕과 무왕도 할 수 없다. 한 번 팽팽하게 당겼으면 한 번 느슨하게 풀어주는 방법이 바로 위대한 문왕과 무왕의 길이다[一張一弛 文武之道也].” 출전 예기(禮記) 잡기(雜記).
☆ 시사상식 / 가안비(價安比)
코로나19...
초(楚)나라 문왕(文王)이 신나라[申國]를 토벌하러 갈 때 등(鄧)나라를 지나니, 등나라 기후(鄧祈侯)가 “나의 생질이다”라며 초문왕을 맞이하고 연회를 베풀어 접대했다. 이때 추생(騅甥), 담생(聃甥), 양생(養甥) 현인 세 사람이 “등나라를 치는 자는 반드시 초문왕일 것이니, 만약 일찍 도모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크게 후회하실 것입니다”라며 초문왕을 죽이라며 한...
주공은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넷째 아들. 무왕(武王)의 동생인 그는 조카 성왕(成王)을 잘 보좌해 나라의 기틀을 잡는 정치를 펴 공자(孔子)가 성인으로 꼽은 인물이다. 그는 아들 백금(伯禽)을 세 차례 만날 때마다 심한 매질을 했다. 이를 본 주공의 동생 강숙봉(康叔封)이 백금과 현자인 상자(商子)를 찾아가 이유를 물었다. 상자는 위로 곧게 뻗은 교(橋)란 나무를...
주(周)나라 기초를 닦은 문왕(文王)의 덕을 찬양한 ‘문왕’이라는 시 구절에서 비롯된 말. “문왕이 위에 계시어, 하늘이 밝게 빛나시니[文王在上於昭于天]/ 주 나라는 비록 오래된 나라이나, 그 수명은 오히려 새롭도다[周雖舊邦其命維新]/(중략) 훌륭한 선비들이여, 문왕이 그대들로써 편안하시겠도다[濟濟多士文王以寧].”
☆ 시사상식 / 스트레스 테스트...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을 멸하고, 주(周)나라를 일으킨 강태공(姜太公)을 제(齊)나라의 영구(營丘)에 장사지냈다. 그 후 반장(返葬:객사한 사람을 고향으로 옮겨 장사지내는 일)이 유행했다. 이 행동을 인(仁)이라 여긴 사람들이 사실을 기록해 유래했다.
☆ 시사상식 / 문센족
‘문화센터족’의 줄임말. 퇴근 후 문화센터에 들러 강좌를 수강하는 20...
생각은 가이 없으니, 이리 뒤척 저리 뒤척(悠哉悠哉 輾轉反側)” 주(周)나라 문왕(文王)과 부인 태사(太姒)의 덕을 칭송하는 시라 말하기도 하고, 아가씨를 짝사랑하는 노래라고도 하는 등 해석은 여러 가지다.
☆ 시사상식 / 규제 샌드박스
새 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 유예시켜주는 제도를 말한다. 사업자가 신청하면 법령을 개정하지...
세상에 나아갈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강가에 나가 낚시로 소일하면서 가난하게 살다가 80세에 비로소 주(周)나라 문왕(文王)을 만나 마침내 뜻을 펼칠 수 있었던 ‘궁팔십 달팔십(窮八十 達八十)’의 강태공이 현세에 다시 살아난 듯한 인물이라 할 것이다.
그는 2014년 인민일보가 주관하는 제9회 인민기업 사회책임상 특별 존경인물상을 수여받았다.
“고난은...
문명왕후는 후에 신라 제30대 문무왕(文武王·재위 661∼681)으로 즉위하는 법민(法敏), 각간 인문(仁問), 각간 문왕(文王), 각간 노차(老且), 각간 지경(智鏡), 각간 개원(愷元) 등을 낳았다. 어렸을 때 이름은 아지(阿之), 커서는 문희(文姬)로 불렸다. ‘삼국유사’ 왕력(王歷)편에서는 훈제부인(訓帝夫人)이고, 시호가 문명왕후라고 하였다.
문희가 김춘추와 혼인한 일화는...
주가 달기(妲己)라는 여자에 빠져 주지육림(酒池肉林)과 포락지형(炮烙之刑)을 즐길 때 서백(西伯) 주왕(周王) 창(昌:후에 주 문왕이 됨)이 이렇게 간했다. 시경 대아(大雅) 탕지십( 蕩之什)편의 마지막 제 8장에 나온다. “문왕이 말하기를 아 슬프다 너희 은상(殷商)아, 사람이 또한 말하되 넘어지는 일이 일어나면 가지와 잎은 해가 없어도 뿌리는 실상 먼저 끊긴다...
맹자 양혜왕(梁惠王)장구(章句) 하에 나오는 죄인불노(罪人不孥)도 비슷한 말이다. “(주 문왕은) 벼슬한 사람에게는 녹을 대대로 주었고, 관문과 시장에서 사정을 살폈지만 세를 징수하지 않았고,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을 금하지 않았고, 죄인의 처자에까지 벌이 미치지 않게 했습니다.”[仕者世祿 關市譏而不征 澤梁無禁 罪人不孥]
형제와 처자는 범위로는 한집안 가족이요 일로는 일상생활이므로 군신이나 붕우에 비해 더 절실하고 가까우니 어찌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고 낮은 곳에서 시작하는 도가 아니겠습니까? 문왕도 ‘아내에게 모범이 되어 형제에 이른다’[刑于寡妻 至于兄弟]고 한 걸 보면, 자사가 시를 인용해 공자의 말씀에 미친 것은 절실하고 분명하다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