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진은 ‘포비든 플래닛’까지 긴 머리를 고수했지만, ‘그리스’에 투입되면서 ‘단발령’을 받게 된다. 그의 기나긴 고민은 하루아침에 해결된다. 메탈리카가 머리카락을 잘랐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다. “메탈리카가 머리를 자르는데 제가 뭐라고요.”(웃음)
송용진은 이날 20년간의 무대 인생을 되짚으며, 직접 콘서트의 구성과 대본을 맡아 뮤지컬 배우...
☆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명언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어도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
1893년 단발령(斷髮令)에 맞서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사람의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손상시키지 않아야 한다)”이라며 그가 한 말. 치열한 저항정신, 목숨을 건 구국의 실천을 보여준 조선 후기의 애국지사....
1895년 ‘근대개혁’의 명목으로 단발령이 공포되었을 때, 단발이 외세가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근대’임을 감지한 조선 남성들은 “목은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는 전통의 논리로 맞섰다. 한편 스스로 상투를 자르고 양복을 입은 개화파 남성들에게 단발은 서구식 부국강병을 통해 조선의 미래를 선도하고자 했던 개화파의 메시지였다.
여성의...
1895년 을미사변이 발발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원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제천전투에도 참전했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경상북도 문경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을사늑약을 계기로 다시 의병을 일으키려 했으나,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뒤 고종이 강제 퇴위되고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 활동을 재개해 관동창의대장을 맡았다. 이어 전국...
1년 뒤 을미사변에 이어 단발령이 내려지자 유생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다가 붙잡혀 복역했다. 1896년 석방된 뒤 고종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고향에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완용(李完用) 등 을사오적 (乙巳五賊) 처단을 상소하고 또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가 두 번째 체포됐다. 그는 이때 일본군에게 모진 고문을 당해 불구가 됐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저항하는 의병 봉기
◇ 나라 밖 역사
포르투갈의 축구선수 에우제비오 다 실바 페헤이라 사망. 1966년 월드컵 8강전 북한과의 대결에서 후반에만 무려 4골을 몰아 넣으며 0-3으로 뒤지던 경기를 5-3 역전승을 이끈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집트 검찰,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에 사형 구형
라면을 개발한 닛산식품 설립자 안도 모모후쿠...
대한제국 김홍집 내각, 단발령 공포
◇ 나라 밖 역사
사담 후세인 이라트 전 대통령에 대한 교수형 집행됨
기독교와 유대교의 갈등을 빚어온 로마 교황청과 이스라엘,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기본협정에 서명
레이건 미국 대통령. 폴란드 사태와 관련해 7개 항의 대 소련경제 제재조치 발표
터키, 북한과의 무역의정서 폐기
프랑스, 크루즈 미사일 개발...
기슭에서 문을 열다
북한의 제1땅굴 발굴
단발령 공포
◇ 나라 밖 역사
중국 공산당 18기 1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이 당 총서기, 리커창 총리 내정자 등 5세대 지도부 공식 출범
중국 장쩌민 퇴진, 후진타오 시대 개막
마이크로 프로세서 탄생
일본 자민당 창당
청의 실력자 서태후 사망
행성운동법칙으로 유명한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