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작품’으로 간주한 기준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옹호, 일본의 침략 전쟁에 대한 찬성,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권에 대한 동의, 징병과 징용 정책에 대한 동조, 신사참배나 창씨개명에 대한 환영 등이었다. 글로써 반민족행위를 한 것이 틀림없고, 이는 우리 문학사에 기록된 최대의 수치로 간주해야 한다. 그래서 미당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시상이...
1938년의 교육령은 황국신민화, 내선일체의 강력한 동화정책의 일단이었다. 조선인 교육기관과 일본인 교육기관의 명칭을 통일하고 군사교육과 일본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는 내용들을 교육의 중심으로 삼았다. 식민지 조선으로부터 전쟁에 필요한 물자공급과 인력지원의 지지를 받아내기 위해 평등개념을 부각시키려고 하였으며 이것이 교육령에 반영되었다....
서울 번화가 한복판 술집 간판이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식민통치 구호인 ‘내선일체’를 연상케 한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27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건대입구 간판 근황’이라는 제목으로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에 있는 한 술집 간판 사진이 게재됐다. 작성자는 “건대에 서울시 광진구 오사카동 생겼다”는 글과 함께 해당 지역에 새로 생긴 프랜차이즈 술집 전경...
양심을 단련케 한다.
이효석의 일본어 작품집이 번역돼 나온 적이 있었다. 5편 소설과 9편 수필의 가장 큰 주제가 ‘내선일체’였다. 그들의 작품을 읽고 좋은 건 좋다, 나쁜 건 나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광수 이효석 최남선 서정주 등을 배제하고 문학사를 가르칠 수는 없다. 그냥 파묻는 것이 대수가 아니다.
단일 민족 신화는 조선의 사대주의와 일제의 내선일체라는 협잡질에 이용됐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한다.
역사평론가 이덕일은 ‘단일민족’을 이렇게 평했다. “중국의 한족은 우리를 동이로 분류했는데 여기에는 말갈·몽골·숙신·선비족 등이 모두 속해 있었다. 조선 후기 극단적인 사대주의 유학자들이 다른 동이족을 오랑캐로 몰면서 우리를 한족과 같다고 주장한...
우리를 심각한 ‘결손 민족’으로 과장하면서 하루빨리 일본에 동화되는 것만이 우리가 살길이라는 신념을 표현했던 그때의 사람들은, 내선일체와 황국 신민화의 당위성을 고무하면서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등 폭력적 담론들을 무반성적으로 양산하였다. 최근 탈(脫)국가주의의 목소리들이 점증하고는 있지만, 아직 국민국가 단위의 실천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기에...
만약 최부잣집 재산을 부도처리해서 몰수하면 당시 일본이 내세운 내선일체 정책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으로 빚보증을 해제해 줬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후 해방이 돼 모든 재산을 되찾게 된 최준은 인재양성을 통한 부국강병을 바라면서 전 재산을 출연해 현 영남대학교를 설립하고 영원한 만석 부자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