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등 경영 9단 대선배들도 버거워했던 경영 환경 속에 젊은 청년 최태원 회장의 경영이 시작됐다.
약 2만 5000명의 구성원과 함께 어려운 시기를 버티고, SK를 글로벌 초대형 그룹으로 도약을 이끌 수 있었던 원천은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는 경영 철학에 있었다.
그는 위기에도...
‘한화오션’으로 탈바꿈하는 대우조선해양의 사내이사로 합류하는 정인섭 전 한화에너지 대표이사도 김우중회장 비서실 출신이다.
산업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대우맨들은 그룹이 해체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매년 3월 22일 한자리에 모여 창립기념일 행사를 치르기도 한다. 대우맨들은 ‘김우중 사관학교’로 불리는 대우세계경영연구회를 설립해...
기업이 주도하는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됐고(김용완 회장, 1978) 이는 오늘날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이 됐다. 사회공헌위원회를 설치해(김우중회장, 1999)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사랑의 열매로 유명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전경련 회관의 조그만 방에서 외환위기 직후 잉태된 것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경제 성장의...
여 원장은 2005년 '대우그룹 분식회계' 사건으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을,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으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2013년 '건설사 뇌물' 사건으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구속기소했다.
여 원장을 시작으로 이원석 내정자의 선배 검사들이 잇달아 사직서를 내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검찰에는 후배가 총장이 되면 지휘에 부담을 주지...
한 사람의 진면목은 사후에나 완성된다고 하더니 4년 전 5월에 별세한 구본무 LG 회장이 그러했다. 소탈하고 담백했던 고인의 행적과 일화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겸손하지 않았으면 나올 수 없는 이야기였다.
만년에 그는 전경련에 발길을 끊었지만 최종현 회장이나 김우중회장 때는 자주 참석하는 편이었다. 그는 항상 회의가 열리기 10분 전에 도착했다. 가장 빨리 오는...
정 회장의 장녀 진희(25)씨와 김지호(27)씨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화촉을 밝혔다. 지호씨는 김덕중 전 교육부 장관의 손자다. 김 전 장관은 김우중 대우그룹 창업자의 형으로, 아주대 총장을 지냈다.
진희씨는 미국 동부 명문여대 웰즐리대학을 졸업한 후 유럽의 유명 컨설팅회사인 롤랜드버거에서 일하다 현재는 현대차 해외법인에서 상품 담당으로...
25일 재계에 따르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장녀 진희 씨와 김덕중 전 교육부 장관의 손자가 다음 달 서울 강북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김대중 정부 당시 문교부(현 교육부) 장관을 지낸 김 전 장관은 김우중 대우그룹 창업자의 형으로, 아주대학교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집안 행사 등 개인정보 관련 사항에 직접 설명이...
상황이 호전된 데는 김우중회장이 주창한 500억 달러 무역흑자론이 크게 기여했다. 당시 관료들은 그해 국제수지 흑자 규모를 기껏해야 30억 달러 정도로 전망했었다. 그러나 김 회장을 전경련의 새 수장으로 맞이한 재계는 정부 예상보다 20배가량 많은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결과적으로 1998년의 경상수지는 416억 달러 흑자, 그만큼 김...
1991년 김우중회장의 옛 대우국민차가 생산한 이후 30년간 국내 시장에서 총 37만여 대가 팔린, 소상공인의 '발'이었다. 이 다마스와 라보 수요를 대체하고 나선 게 초소형 전기화물차다.
초소형 전기화물차의 장점은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배터리 전기차인 만큼 뛰어난 친환경성을 자랑한다.
한번 충전하면 최대 120km까지 주행할 수 있고, 작은 차체를 바탕으로...
☆ 김우중(金宇中) 명언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대한민국의 1세대 기업인으로, 전 대우그룹 회장이다. ‘세계경영’을 기치로 내걸고 그룹을 키웠으나 대우는 1998년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지며 이듬해 해체됐다. 자본금 500만 원으로 시작한 대우는 출범 30여 년 만에 41개 계열사, 396개 해외법인을 거느린 재계 서열 2위로 성장했다. 수출액은 186억 달러로...
김선협 대우재단 이사장은 “김우중회장은 생전에 4개 대우병(의)원이 무의촌 의료사업의 모범적 전형이 돼야 한다며 적극적 진료 활동을 독려했다”며 “소외된 곳에서 땀과 열정을 쏟는 보건의료인을 발굴해 귀감으로 널리 알리고 사회에 작은 울림을 줄 수 있도록 역량을 모아나가겠다”고 밝혔다.
공보에는 이연기 민생당 수석대변인 겸 비대위원, 정책에는 배원기 전김우중회장 수행비서, 권대욱 주식회사 휴넷 회장, 조직 분야에는 정홍 피비파트너스 전무이사, 강경선 한국방통대 명예교수, 이필용 전 충북도의원 등이 임명됐다.
야심 차게 나선 것과 달리 두 후보는 이렇다 할 지지율 상승을 보이지 못했다. 이날 KSOI가 TBS 의뢰로 5일부터 이틀간 전국...
현재 주범인 고(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지난 2019년 사망한 터라 공범으로서 연대책임 판결을 받은 전 대우그룹 임원들이 추징 대상이 된 상태다.
또 다른 장기 체납은 1996년 반란수괴 혐의로 2200억 원 추징을 선고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25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966억 원을 체납하고 있다. 검찰은 올해 말까지 16억5000만 원을 추가 환수할...
대우그룹의 김우중회장은 밖에 나가 보니 돌멩이도 수출되겠다며 재계의 노력을 결집했다. 결국 그해 416억 달러, 이듬해인 1999년에는 284억 달러의 국제수지 흑자를 일궈냈다. 국민들의 금 모으기로 생긴 달러까지 더해 2001년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빌린 돈을 모두 갚고 경제주권을 회복했다.국제수지 500억 달러 흑자는 수치상의 목표가 아니라 위기...
◇IMF 구제금융 시절 절정에 달했던 대한민국 경차
이를 지켜보던 김우중 당시 대우자동차 회장은 가만히 머물러있을 수 없었다.
소형차 만들기 노하우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대우차는 기아산업과 정면대결 대신, 그 아랫급인 경차 시장을 파고드는 묘수를 짜냈다.
김 전 회장은 서둘러 국민차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대우국민차를 세웠고, 일본 경차 브랜드...
지난해까지 2년 연속 공개 대상이었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작년 12월 별세해 명단에서 빠졌다. 작년 개인 지방세 체납자 2위였던 오정현(49) 전 SSCP 대표는 불복청구로 명단에서 빠졌다.
법인 중에서는 과거 용산역세권 개발 시행사인 드림허브프로젝트가 552억1천400만원으로 체납액 1위를 유지했다. 이어 지에스건설(167억3천500만원·GS건설과...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등을 저술한 강 작가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각을 말의 형태로 쓰는 일을 하는 비서관 출신이다. 말하고 글쓰기에 능한 그의 노하우를 만날 수 있다.
강연은 30분~1시간 이내로 진행될 예정이다. 인터파크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시청 가능한 모바일 라이브 방송 채널...
고인은 1975년 고(故) 김우중회장의 제안을 받고 대우그룹으로 옮겼다. 대우 사장, 대우중공업 사장, 대우 부회장 등을 역임했고, 1995년 대우 회장으로 취임했다. 1999년 대우그룹 해체 이후에는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로 8년간 재직했다.
전 세계 90여 개국을 누비며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고인은 은탑산업훈장, 산업평화상, 한국경영자대상, 이탈리아...
또 다른 창업세대였던 김우중 전 대우 회장도 작년 별세했다.
고인은 대표적 자수성가 기업인으로,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건설 분야에 걸친 거대 그룹을 키워낸 신화적 경영자였다. 1921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난 그는 일제 강점기이던 1942년 단돈 83엔을 들고 홀로 일본에 건너갔다. 신문과 우유 배달 등으로 고학 생활을 하면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유명 저서를 남긴 고(故)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냉전이 끝나자 가장 먼저 동유럽으로 달려가 세계경영의 씨앗을 뿌렸다. 중남미, 중국, 베트남, 아프리카 등 당시 왕래도 드문 낯선 땅에 가장 먼저 진출해 대한민국의 브랜드를 알렸다.
투자 신대륙을 찾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외환위기 당시 대우그룹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