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부에 이어 아버지도 기해박해 때 순교했다.
그는 1836년 한국에 온 최초의 서양(프랑스) 신부 모방에게서 영세를 받고 예비신학생으로 뽑혔다. 이어 마카오로 가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서양식 중등교육 및 신학 과정을 이수한 뒤 1842년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의 지시에 따라 동북국경을 이용하는 잠입로를 개척하고자 나섰다. 하지만 사정이 좋지 않아 포기했다....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년)을 거치면서 문헌상으로만 100명이 넘는 천주고 신자가 이 곳에서 처형됐다. 특히 1984년 성인 반열에 오른 순교자 103명 중 44명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도심에 고립돼 활용도가 낮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시는 올 상반기 중 설계공모를 진행하고 2015년 상반기까지 실시설계를 마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