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된 것은 궈 회장이 지난 25일 “정치와 군사 등 국가의 중대한 일들에 대해서 후궁이 일을 열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인터넷에서는 “여성을 멸시하는 발언” “총통이 아니라 황제가 될 것” 등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궈 회장은 26일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를 통해 “비유가 부적절했다”고 사과하면서 “청렴을...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 생모인 순헌황귀비의 사당 ‘덕안궁’으로 사용되던 옛 국세청 별관 부지에는 1937년 일제가 조선총독부 체신국 청사를 건립, 1978년엔 국세청 남대문 별관으로 이용됐다.
서울시는 국세청 별관 건물 철거를 위해 당시 소유자였던 국세청과 협의해 2014년 국세청 별관 부지와 청와대 사랑채 내 서울시 부지 교환을 결정했다.
서울시는 광복...
진시황이 죽자 환관 조고(趙高)는 후궁 소생 호해(胡亥)를 황제에 앉히고 태자는 죽였다. 승상이 된 조고는 황제가 되려고 반란을 꾀했으나, 군신들이 자기를 따르게 될지가 염려되어 사슴을 가져다가 황제에게 바치며, “이것이 말이옵니다”라고 했다. 조고가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을 모두 투옥시키자 그가 하는 일에 다른 의견을 말하지 못했다. 사기(史記)...
가락국 왕의 총애를 받던 후궁 미희 이야기다. 미희가 어느 날 작은 섬으로 숨어들었다. 신하들이 환궁을 요청하자 미희는 황금 돼지로 변해 무학산으로 사라졌는데, 이후 황금 돼지가 백성을 괴롭힌다는 소문이 떠돈 것. 병사들이 금빛 돼지에 활을 쏘자, 한 줄기 빛이 내려와 섬이 돼지가 누운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다.
신라 때는 돝섬에서 밤마다 돼지 우는 소리가 나...
경남 창원시에 있는 ‘돝섬’은 가락국왕의 총애를 받던 후궁이 사라진 후 사람들을 괴롭히는 황금돼지로 변했고, 그 후 괴이한 빛이 돼 이 섬으로 날아가 누운 돼지 모습의 섬이 됐다고 한다. 이 섬에서 염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와 섬에 있는 황금돼지상도 이러한 전설과 관련이 있다.
경기 이천시에는 옛날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던 효자가 절벽에서 약초를...
낙선재(樂善齋)는 1847년 조선의 24대 임금으로 문화적인 감수성이 탁월했던 헌종(憲宗, 1827~1849)이 당시 후궁이었던 경빈(慶嬪) 김씨를 위하여 지은 집이다. 이 낙선재가 건축되기 전부터 조선 궁중에는 한글로 쓴 소설들이 다수 존재했는데 낙선재가 건축된 후로는 이들 소설을 다 낙선재에 보관했다.
그 후로도 지속적으로 필사를 더한 것들을 보관해 오던 것이 6·25 등...
이 밖에 청와대 경내 관람객 가운데 희망자에 한해 개방해오던 칠궁(七宮)도 사전예약 방식으로 시민들에게 개방된다. 칠궁은 조선의 왕과 대한제국 친왕을 낳았으나 종묘에 모시지 못하는 일곱 후궁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문화재청은 경호처와 협의해 오는 6월부터 하루 5차례 시범관람을 시행하고, 7월부터는 주중 5회·주말 10회로 관람을 확대할 예정이다.
백야단(白也丹·?~1297)은 충렬왕의 후궁이다. 태산군(泰山郡·현 전북 정읍) 사람인 시씨(柴氏)의 딸로서 처음에 궁인으로 입궁하였다. 일명 무비(無比)라고도 불리는데, 무비란 비교의 대상이 없다는 뜻이니 매우 아름다웠을 것이다. 예전에 의종(毅宗)의 궁인에도 무비가 있었는데, 그녀 역시 미모로 왕의 사랑을 받은 바 있다. 백야단을 무비라고도 부른 것은 미색과 왕의...
수원 권씨(脩媛 權氏)는 신라 49대 헌강왕(憲康王, 재위 875∼886)의 후궁으로, 법호(法號)는 수원(秀圓)이다. 후궁의 품계 중 하나인 수원(脩媛)은 정2품에 해당된다. 그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는 없다. 9세기 중후반에 최치원이 찬(撰)했다고 알려진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를 비롯한 불국사 관련 자료 중...
의빈 권씨(懿嬪權氏)는 예조판서 권홍(權弘)의 딸로, 태종의 후궁이다. 조선 왕실 내에서 내명부 직첩을 가진 인물 가운데 최초로 비구니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권씨는 1402년(태종 2) 태종의 후궁 중에서도 처음으로 정식 절차를 거쳐 후궁으로 봉해졌다. 태종은 애초에 권씨와 가례(嘉禮)를 거행하려 하였으나 원경왕후의 반대로 예식은 무산되었다....
한편 2007년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로 데뷔한 박훈은 '태양의 후예' '맨몸의 소방관', 영화 '고사: 피의 중간고사' '김종욱 찾기' '안녕, 투이' '검사외전' 등에 출연한 바 있다.
박민정은 지난 2004년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로 데뷔했으며, 드라마 '한뼘 드라마' '황금사과' '대풍수', 영화 '마지막 선물' '후궁 : 제왕의 첩' '리얼' 등에서 열연을 펼쳤다.
비슷한 시기에 폐서인이 된 단종의 누이 경혜공주는 순천군의 관노가 되었고, 단종의 후궁 권중비는 공신 집안의 사노(私奴)로 배속되었다. 이러한 전후 상황으로 미루어 송씨가 출가를 한 것은 왕비로서의 마지막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 구 귀족인 여산송씨 집안의 숭불적 성향도 왕비의 출가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송씨의 행적은...
화완옹주(和緩翁主·1738~1808)는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의 막내딸로, 영조의 9녀이다. 그리고 사도세자의 친여동생으로 정조의 친고모가 된다. 12세 때 동갑인 일성위(日城尉) 정치달(鄭致達)과 혼인하여 슬하에 1녀를 두었다. 그러나 딸이 태어난 지 5개월여 만에 죽고, 딸이 죽은 지 한 달도 못 되어 남편 정치달이 20세에 요절했다.
화완옹주는 옹주 시절 아버지 영조의...
조선 16대 국왕 인조의 후궁으로 소현세자를 몰락시키고 김자점(金自點)과 역모를 꾀하다가 사사(賜死)되었다. 아버지는 조기(趙琦)이며, 어머니는 한옥(漢玉)이다. 자녀는 2남 1녀로 숭선군(崇善君) 이징(李澂)·낙선군(樂善君) 이숙(李潚)·효명옹주(孝明翁主)이다.
조 소용(昭容)은 숙원(淑媛)부터 시작하여 소의(昭儀)를 거쳐 귀인(貴人)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녀는...
천민 출신이 어떻게 왕의 후궁이 될 수 있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경제에 대한 충혜왕의 남다른 관심 덕분이었다. 원 간섭기에는 나라에 돈이 많이 필요했다. 원에 바쳐야 하는 막대한 공물, 수시로 오가는 원의 사신 접대와 고려 관리의 원나라 사행(使行) 비용, 빈번한 왕과 공주의 입원(入元) 및 기본적인 국가 운영비 등으로 늘 재정이 부족하였다. 충혜왕은 재정...
오지혜는 1991년 연극 '따라지의 향연'으로 데뷔했으며, 이후 드라마 '당신 옆이 좋아' '사랑하고 싶다' '크라임씬' '공항가는 길'과 영화 '태백산맥' '꽃잎' '초록물고기' '8월의 크리스마스' '안녕, 형아' '다찌마와 리' '똥파리' '후궁 : 제왕의 첩'등 굵직굵직한 작품에 출연했다.
영화 '귀향'에서는 모친과 절친한 사이인 손숙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故 윤소정의 아버지는...
딸은 영화 '귀향' '후궁 : 제왕의 첩'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 배우 오지혜이다.
부인상을 당한 오현경은 연극계 거목으로 1961년 KBS 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드라마 'TV 손자병법'에서 만년과장 이장수 역으로 대중에게 깊은 각인을 남겼으며, 이후 '신돈' '참 좋은 시절' '가시나무 새'등에 출연한 바 있다.
윤소정은 1994년 오현경이 식도암과 위암으로...
연산군은 폐위되기 며칠 전 후궁 장녹수와 전전비(田田非) 등과 함께 후원에서 잔치를 열었다. 그날따라 울적했는지 시를 짓고 눈물을 흘렸다. 장녹수와 전전비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연산군이 “지금 태평한 지 오래이니 어찌 뜻하지 않은 변이 있겠느냐마는 만약 변고가 생기면 너희들도 반드시 면하지 못하리라”고 우려했다.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 1506년...
남편이 사랑하는 미모의 후궁 무비(無比)도 있었지만 천인 출신이라 그녀와는 지위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대로라면 남편 사후 태자가 왕위에 오르고, 그녀는 태후가 될 것이었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불행이 닥쳐왔다. 1170년 무신란이 일어난 것이다. 의종과 태자는 거제현과 진도현으로 각각 추방되었다. 3년 뒤 남편은 이의민(李義旼)에 의해 잔인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