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흔은 태종무열왕의 9세손으로, 증조부는 이찬 주원(周元), 할아버지는 시중을 지낸 소판 종기(宗基)이며, 아버지는 파진찬 장여(璋如)이다. 김흔의 딸은 ‘삼국유사’ 탑상(塔像)편의 낙산이대성 관음 정취 조신(洛山二大聖 觀音 正趣 調信)조에서 조신(調信)과 관련되어 나온다. 조신은 세달사(世逵寺)의 승려였는데, 절에 다니러 온 태수 김흔의 딸을 보고 매혹됐다....
중국에서 ‘정관(貞觀)의 치(治)’를 이룬 당 태종은 ‘3개의 거울’을 자신의 성공비결로 꼽았다. 의관을 바로잡을 청동 거울, 역사의 흥망 사례를 돌아보는 역사 거울, 직언을 서슴지 않는 충신 거울이 그것이다. 작금의 리더들은 과연 몇 개의 거울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혹시 그들이 갖고 있는 3개의 거울은 볼록거울, 오목거울, 때 낀 거울은 아닌가?
둘째, 직책에...
태종무열왕 대에 요석궁에서 살며 공주로 칭해졌다는 점에서 태종무열왕의 딸로 보기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요석궁 공주는 승려인 원효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았다. 두 사람은 정식 혼인 관계는 아니었다. 요석궁 공주는 다른 사람과 혼인했다가 과부가 되어 요석궁에서 혼자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원효가 거리에서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다녔다. “누가 자루 없는...
설승충은 태종무열왕의 아들인 김인문(金仁問)과 함께 당나라로 건너가 당에서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이 되었다. 좌무위장군은 신라의 태종무열왕이 즉위 전 당나라에서 받았던 것으로 외국인에게는 최고위직이었다. 설요는 좌무위장군인 아버지 밑에서 비교적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15세 되던 해 설요는 뜻하지 않은 시련을 겪게 되었다. 아버지...
강수(强首)는 태종무열왕과 문무왕 대에 활동했던 유학자이자 문장가이다. 신라가 통일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외교 문서를 도맡아 작성한 사람이 강수였다. 문무왕이 “나의 선왕께서 당나라에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하였던 것은 비록 군사적 공로라고 하나, 또한 문장의 도움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강수의 아내는 부곡...
하지만 왕자의 난으로 수도를 다시 개경으로 옮기는 굴곡을 겪으면서 한양이 조선의 수도로 위치를 확고히 한 것은 결국 태종 때인 1405년이었다. ‘개경이냐, 한양이냐’는 갈림길에서 정보가 빨랐던 자에게 새로운 수도는 부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고, 개경 상권의 몰락과 함께 부(副)의 흐름은 세대교체를 맞게 됐다.
돈은 과거나 현재나 권력의 최상층과 밀접한...
선화공주의 첫째언니는 선덕여왕으로 즉위하는 덕만공주이고, 둘째언니는 김용춘과 태종무열왕으로 즉위하는 김춘추를 낳은 천명공주이다. 신라의 선화공주가 백제의 서동에게 시집을 간 일화가 ‘삼국유사’에 ‘서동요’와 함께 전해진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가 얼마나 아름답던지 신라를 넘어 이웃나라인 백제에까지 그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정도전의 경쟁자였던 태종 이방원도 한양 건설에 박차를 가한다.
태종 11년인 1411년에는 “성 안에 장랑(長廊)을 지으라고 명하고, 강원도 군정(軍丁) 1만3000명을 동원해 재목을 베었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1414년에도 태종은 도성에 좌우 행랑을 지을 것을 명한다. “종루(鐘樓)에서 남대문에 이르기까지, 종묘 앞 누문(樓門)에서 동대문 좌우에 이르기까지 행랑(行廊)을...
봉덕사는 혜공왕이 속한 중대 왕실의 중시조인 태종무열왕을 기념하는 원찰이다. 성덕대왕 신종은 태종무열왕에서부터 할아버지 성덕왕, 아버지 경덕왕을 거쳐 혜공왕에 이르기까지 중대 왕실이 집약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각종 반란으로 혜공왕의 왕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만월태후는 성덕대왕 신종을 통해 혜공왕이 혈통적으로 중대 왕실의 정통 왕위...
태종 때부터 기록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부터 제조한 것으로 여겨진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그 처방이 수록됐고, 이후 연구가 꾸준히 진행돼 임상적으로 우수한 효과가 입증되면서 우리 고유의 처방으로 발전했다.(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
영·정조 시대에 청나라에 갔던 많은 사신들은 개인적으로 100개에서 200여 개의 청심환을 가져갔고...
어느 날 당 태종은 신하들에게 “창업과 수성은 어느 쪽이 더 어렵소?”라고 질문했다. 방현령이 “난세에 이루는 창업이 더 어렵다”고 말하자 위징은 “천하를 얻고 나면 교만과 안일 속에 빠져 그만 잃게 되니 수성이 어렵다”고 반론을 펼쳤다. 태종은 “창업의 어려움은 지나갔다”며 수성론에 더 힘을 실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수기업인 삼양그룹의...
'도은선생시집'은 조선 태종 때인 1406년 고려말 문학가 이숭인(1074∼1151년)의 시문과 그의 시문을 칭송한 국내 저명 문인과 중국 사신의 서발을 엮어 만든 문집이다.
신청본은 '도은선생시집' 전체 5권(시집 3권·문집 2권) 중 2권이 남아있지만,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시는 설명했다.
신청본은 활자 계미자본(癸未字本)으로 인쇄된...
원경왕후가 태종과 함께 묻혀 있는 곳이다. 태종의 정비 원경왕후 민씨(1365~1420)는 개경의 명문가 출신이었다. 원경왕후는 열여덟에 두 살 아래인 이방원(태종)과 혼인했다. 당시 신흥세력으로 부상하던 이성계가 선택한 집안이었으니 그 사회적 기반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원경왕후는 혼인 후 10여 년간 이성계가 새 왕조를 창건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예를 들면 조선왕조의 세 번째 왕인 태종에 대한 평가가 그것이다. 장희빈만큼이나 영화, 드라마의 단골 인물로 출연(?) 중인 정안군 이방원은 시대나 작가, 혹은 연출자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고려 충신 정몽주를 죽이고 이복동생과 동복형까지 해하며 왕위에 오른 폭군 이미지로 그려지는가 하면,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조선시대에는 난초, 국화, 대나무와 더불어 사군자에 꼽히기도 했고요. 태종이 특별히 좋아하던 꽃인데, 창덕궁 선정전 앞에는 와룡매(臥龍梅)라 불리는 백매와 홍매 두 그루가 임진왜란 전까지 있었다고 해요. 지금은 덕혜옹주가 마지막까지 살았던 낙선재에도 매화나무가 많으니(근래에 심은 것), 아름다운 매화를 볼 겸 궁궐 나들이 떠나보는 것 어떨까요?”
태종과 달리 공신한테 휘둘린 왕이죠. 한명회는 밀본의 변절자이고요. 한 가지 고민은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선인이 없다는 점이에요. 결국 시청자는 싸우는 것을 지켜보는 제3자의 입장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드라마가 성공한 예가 없기에 한다면 모험이 되겠죠.
벽골제는 통일신라 시대인 원성왕 6년(서기 790년) 증축한 사실이 기록돼 있고, 이후 조선 태종 15년(서기 1415년)에도 이를 보수하고 축조한 역사가 남아있다.
벽골제 수문은 당시에도 저수지 축조기술은 물론 정밀도가 매우 높은 수준측정법(水準測定法)이 동원됐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진만강 전북문화재연구원 책임조사원은 "중심거는 지난 2013년...
그는 극 중 태종 이방원을 연기했다.
유아인은 “정치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시대 정치인이다”며 “사회가 점점 개인화되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살아가지만, 우리가 어떤 세계에서 살아갈지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이 정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성세대가 만든 이분법적 논리와 선악 구도에서...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주연 배우 유아인이 50회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고 태종 이방원으로 재탄생했다.
22일 오후 방송된 ‘육룡이 나르샤’(극본 김영현 박상연, 연출 신경수) 마지막회에서는 조선의 3대 왕 태종에 오르는 이방원의 모습이 그려졌다.
영화 ‘베테랑’, ‘사도’를 통해 스크린에서 진한 존재감을 발휘한 유아인은 ‘육룡이 나르샤’에서...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 조선 3대왕, 태종이 되는 과정을 피와 계략, 정치적 셈법으로 드러낸 과정을 유아인의 강렬한 연기톤으로 살려냈다.
조선의 정치적 건국자이자 이성계의 책사로 이방원의 스승이며 최후의 정적인 정도전을 맡은 김명민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의 명연기를 선사했다.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빼어난 연기력, 완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