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은 최영이 아닌, 이성계를 선택해 조선을 창업했다. 장애를 딛고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루이 하오가 그의 곁을 지켜준 덕분이었다. 역사에서 성공한 1인자 곁에는 늘 그를 지켜준 2인자가 있었다. 훌륭한 2인자에게서는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들은 자신을 낮춰 1인자를 1인자답게 만드는 자기희생과 헌신이 몸에 밴 사람들이었다....
필립 제이슨. 독립운동가 서재필(1864.1.7~1951.1.5.)의 미국 이름이다. 그는 한국인 최초의 미국 시민권자였다. 미국인이라는 신분은 독립운동을 하던 그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서재필은 갑신정변 실패로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갑오개혁이 진행 중이던 1895년 귀국한다. 이어 입각하라는 개혁 내각의 제의를 고사하고 독립신문을 창간한다. 서재필은 독립신문을 통해...
‘자식이 어떻게 해서 부모의 특징을 닮는가’ 하는 문제는 과학자들이 풀고자 했던 오랜 숙제였다. 이런 유전의 비밀을 처음 푼 사람이 오스트리아 성직자 멘델(1822.7.22~1884.1.6)이다.
그는 원래 과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집안이 가난해 수도사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탐구에 대한 열정은 막을 수가 없었다. 수도사로 활동하는 동안 약 15년간 완두콩 교배 실험을 통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안다. 글을 단번에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소설가 김동인(1900.10.2~1951.1.5)은 탈고 없이 글을 쓴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쓸 분량만큼 원고지를 미리 책으로 엮어 쪽수까지 매긴 후, 수정을 하지 않고 죽 써 내려가는 천재성을 보였다고 한다.
김동인은 신소설에서 시작된 우리의 근대소설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때까지 ‘이다’...
아이작 뉴턴(1643.1.4~1727.3.31)의 사과는 세상을 바꿨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깨달은 만유인력(萬有引力)은 ‘발견 중의 발견’이라고 한다. 뉴턴 이전의 사람들은 땅에서 일어나는 법칙은 땅에서만 가능하고 하늘(우주)이나 바다 속에서는 다른 규칙이 적용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뉴턴은 태양과 달과 지구가 같은 물리력의 영향을 받는다며 종전의 ‘상식’을 깨뜨렸다....
‘의무론’의 저자 키케로(BC 106.1.3~BC 43.12.7)는 로마 공화정 말기의 사상가나 철학자 정도로 알려져 있다. 동시대의 걸출한 정치가 카이사르의 그늘에 가려진 탓인지 정치가로서의 그를 잘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그는 카이사르에 맞서 꺼져가는 공화정 체제를 지키려 한 비운의 정치가였다.
기사계급 출신이었던 키케로는 신분상의 불리함을 딛고 웅변술과...
많은 사람들에게 김경천(金擎天, 1888.6.5~1942.1.2)은 낯설다. 하지만 1920년대만 하더라도 그는 자신이 활동하던 만주와 러시아는 물론, 국내 한인 동포들에게도 꽤 알려진 무장 항일투쟁의 1인자였다. 그는 기마술 등 선진 전략·전술로 어떤 독립운동가보다 효과적으로 항일운동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그것을 일본 육사에서 배웠다.
유명한 무관...
고려 말의 명신 우탁(禹倬)은 강직한 선비였다. 그가 감찰규정으로 있을 때 충선왕이 상중에 부왕 충렬왕의 후궁을 간음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우탁이 백의(白衣) 차림으로 도끼를 들고 대궐로 들어가 패륜을 멈추라고 극간(極諫)한다. 도끼로 제 마음을 찍듯, 선비의 대쪽 같은 지조를 보여주는 지부상소(持斧上疏)였다.
1876년(고종 13년) 2월, 조선 말의 대표적인...
그는 개화의 선각자, 항일투사, 국내 최초의 세계 법학자, 조선의 마지막 선비 등으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한학을 공부한 김준연은 영암보통학교에 입학한 13세 때에 같은 마을에 살던 네 살 연상의 김옥성과 결혼해 60년간 축첩하지 않고 해로했다. 일본 유학 중 조선기독교청년회의 부회장을 맡아 활동하던 그는 1919년 도쿄 2·8독립선언에 주동적으로 참가했으며...
5년 6개월에 걸친 2차례의 투옥, 26차례의 체포, 7차례의 구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음에도 삶 전부가 온전히 민주주의인 사람. 독재정권 치하에서 고문을 당하면서까지 민주화 운동을 한 김근태(1947.2.14 ~ 2011.12.30)는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5년 ‘고문기술자’로 알려진 이근안에게 23일 동안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했다. 김근태는 2005년에 수감돼 있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프랑스 전투와 한국전쟁에 참전해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불멸의 업적을 남긴 전설적 전쟁영웅 김영옥 대령(1919. 1.29~2005. 12.29)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독립운동가 김순권(1886~1941)의 장남으로 태어난 김영옥은 전 세계를 통틀어 유일하게 3개국(한국,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최고 무공훈장을 받았다. 그의...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가 2003년부터 2004년 10월 은퇴할 때까지 활동했던 LA 갤럭시의 소유주는 억만장자 필립 앤슈츠. 그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뽑은 2013년 ‘세계 재벌들의 월드컵 베스트 11’에 선정됐었다. 이는 세계 축구계를 움직이는 큰손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자료로, 프로 축구팀을 소유한 ‘슈퍼 리치 베스트 11’이었다. 그는 올해 포보스가...
2014년 4월 16일, 항해하던 세월호가 느닷없이 침몰해 사망 295명, 실종 9명 등 304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어린 학생들을 살릴 수 있었던 7시간, 행적이 불투명한 박근혜 대통령으로 인해 골든타임을 놓친 대한민국.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에 발발한 한국전쟁 때도 그랬다. 이승만 대통령(1875.3.26~1965.7.19)에게는 6시간 만인 오전 10시에 보고됐다. 부임한 지...
일본에서 벌어진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한·일 관계가 격랑에 휩쓸린 지 1년여 지난 1974년 8월 15일, 제29주년 광복절 행사에서 박정희 대통령(1917.11.14~1979.10.26)이 경축사를 낭독하는 순간 재일교포 2세 문세광이 대통령을 저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통령은 연설대 뒤로 피했지만 귀빈석에 있던 영부인 육영수(1925.11.29~1974.8.15) 여사는 머리에 총탄을 맞고...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원회 관련자 8명이 1975년 4월 8일 사형이 확정된 지 18시간 만에 4월 9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유신체제 하의 대표적 인권침해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을 국제법학자협회는 ‘사법살인’으로 규정하고,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당시 사형수들은 “억울하다. 정의가 우리의 희생을 밝혀줄 것이다”...
더 나아가 ‘발해고’를 지어 발해의 인물, 군현, 왕의 계보, 연혁을 자세히 엮어 종합해 놓았으니,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고려가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지 못하였음을 한탄한 것이다.” -1785년 박제가가 쓴 ‘발해고’ 서문 중에서
조선 정조 때의 선비 유득공(柳得恭, 1748. 12.24~1807. 10.1)은 유춘과 남양 홍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지만 증조부 유삼익과 외조부...
죽더라도 한국을 지키겠다.”
주한 미8군 초대 사령관 월튼 해리스 워커(1889.12.3~1950.12.23)는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북한군을 막아내기 위해 낙동강 방어라인(워커라인)을 구축해 승리를 이끌어낸 인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크리스마스를 앞둔 1950년 12월 23일, 함께 참전하고 있던 아들 샘 S. 워커(1925. 7.31~2015. 8.8)의 은성 무공훈장 수상 축하를 위해 가던...
수학에 천부적 재능이 있었으나 꿈을 펼칠 수 없었던 인도 빈민가의 라마누잔과 그를 유일하게 알아준 영국의 수학자 하디 교수, 이들은 5년간 함께 연구하며 ‘분할함수’ 등 수많은 공식과 이론을 증명해냈다. 두 뇌섹남의 특별한 우정 ‘브로맨스’는 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2015), 연극 ‘사라지는 A’(2009) 등으로 소개됐다.
남인도 에로데에서...
1961년 12월 21일 서른한 살의 청년이 박정희 정권의 첫 번째 사법살인 희생자가 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1930.4.24~1961.12.21)이다. 그는 그 전날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의 사형집행 재가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억울하게 사형증을 받았다. 그로부터 51년이 흐른 2012년 12월 20일에는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18대 대통령...
“이곳은 친일파 민영은(閔泳殷)의 후손들로부터 시민 여러분이 지켜낸 우리의 땅입니다.” 충청북도 청주 상당사거리에는 ‘민영은 후손들의 토지에 대한 소송 승소’를 기념하는 시민운동 동판이 설치돼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법무부의 늑장 대응으로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은 이해승(1890.6.22~1958?)의 재산 114억 원을 국고로 환수하는 데 실패해 청산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