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1928.6.14~1967.10.9)는 1960년대의 저항을 상징하는 캐릭터이자 아이콘이다. 아르헨티나 의사 출신인 그는 독재정권에 맞서는 일이라면 세계 어느 곳이든 달려갔다. 검은 베레모, 텁수룩한 수염은 산악을 누비며 게릴라 투쟁을 한 그를 상징한다. 혁명에 성공한 후에도 그는 누구처럼 치부를 하지도, 권력을 탐하지도 않았다. 마지막까지 혁명의 최전선에서...
명성황후(1851.11.17~1895.10.8)에 대한 우리 국민의 연민은 깊다. 일본 낭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된 그녀를 애처롭게 여기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래서인지 그녀에 대한 평가는 늘 후하다. 조선의 국모로서 손색이 없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국민 정서를 떠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그녀를 평가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
‘나라를 망친 장본인’에서...
숙종(1661.10.7~1720.7.12)을 장희빈의 치마폭에 놀아난 나약한 국왕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TV드라마에 나온 이미지일 뿐이다. 그는 남인과 서인이 득세하는 붕당정치판에서 뛰어난 정치력으로 강력한 왕권을 구축한 군왕이다. 임진·병자 양란으로 왕실이 점점 기울어가는 상황에서 왕권 강화는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을 것이다.
숙종은 열네 살 어린 나이에 왕이 됐지만...
시 쪽에서는 대체로 재난이라는 것이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의미망을 띠었던 데 비해, 소설 쪽에서는 매우 구체적이거나 가상적인 상황을 설정해 인물들이 재난과 맞서는 과정을 형상화해왔다.
일찍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절망의 재난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를 담은 프랑스 소설이다. 작가는 가혹한 현실...
석주명(1908.11.3~1950.10.6)은 ‘나비 박사’로 통한다. 일제 강점기의 척박한 환경에서도 그는 나비에 이름(학명)을 붙이고 서식지(분포)를 알아내려 조선 산하를 미친 사람처럼 누볐다. 20여 년간 채집한 나비만 75만 마리에 이른다고 하니 그의 집념을 알 만하다.
석주명이 곤충학에 눈을 뜬 것은 일본 가고시마(鹿兒島) 고등농림학교 유학 시절이었다. 석주명은 그 학교에...
스티브 잡스(1955.2.24~2011.10.5). 검은 터틀넥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그를 읽곤 했다. 무엇이 그를 혁신의 아이콘으로 기억하게 했을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지만 잡스는 컴퓨터 개발자가 아니다. 그는 분명히 혁신적인 컴퓨터 기술을 확산시키는 데 많은 역할을 했지만 정작 자신이 발명한 것은...
그는 배우 생활 틈틈이 문화와 인물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었다. 어떤 배역을 맡으면 그것과 관련된 모든 것을 하나하나 찾아 분석했다. 그랬기에 그는 어떤 역할도 자신 있게 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특이한 이력도 있다. 바로 전미 총기협회장이다. 이 이력에서 그가 극렬 보수주의자일 것이라는 사실을 금세 떠올릴 수 있다. 실제로 그는 2000년...
이들 세 권의 책은 변화의 과정, 방향, 주체가 마치 한 묶음인 것처럼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다.
통신혁명, 재택근무, 전자정보화 등 30~40년 전에 이들 책을 통해 토플러가 제시한 미래상이 오늘날 우리 눈앞에서 그대로 펼쳐질 줄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김대환 편집위원 daehoan3000@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간디는 인도 시인 타고르가 붙여준 이름 마하트마, 즉 ‘위대한 영혼’으로서 거의 성자 반열의 인물이다.
하지만 간디가 1차 세계대전 당시 식민지 인도 청년들을 징병해 전쟁터로 내몰았다면 믿겠는가. 간디의 두 얼굴을 보여주는 역사적 기록이 분명 존재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면 이러한 사실이 인도의 국부로 추앙받는 간디에...
이렇듯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엄궁동 사건의 수사기록을 면밀히 재검토하고 당시 수사를 맡았던 형사들과 주변인물들을 찾아 엄궁동 2인조의 23년 전 자백과 오늘의 고백 중 무엇이 그날의 진실을 가리키는지를 파헤친다.
한편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매주 토요일 오후 11시10분에 방송된다.
지미 카터(1924.10.1~) 하면 무엇보다 ‘인권 외교’가 떠오른다. 철저한 침례교 신자인 그는 외교 문제를 다룰 때도 예외 없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곤 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1970년대 후반도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냉전시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파격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그때까지 미국은 외교 문제를 정치·군사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카터의 인권외교...
2005년 9월 30일 췌장암과 패혈증으로 숨진 비전향 장기수 정순택(1921.5.8~2005.9.30)의 유해가 그해 10월 2일 남북 간에는 처음으로 북한에 송환돼 평양 애국열사릉에 안치됐다. 그는 47년 만에 꿈에 그리던 북한 가족의 품에 안겼다.
충북 진천에서 태어난 정순택은 상공부 공무원으로 재직 중 월북해 북한에서 기술 자격 심사위원회 책임 심사원으로 일했으며...
“대통령 각하, 저는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사법부가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제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제 의무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는 역사의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 대통령 각하, 정직하게 살아온 한 시민으로서 솟구치는 분노와 더불어 온몸으로 제가 이 진실을 외치는 것은 바로 당신을 향해서입니다. 저는 명예로운 당신이...
“우리가 바라는 건 나라의 독립이다. 위험하다 해도 지금의 (일제 치하의) 상황보다 위험한가.” 비밀결사 대한애국청년당 강윤국, 조문기, 유만수 등은 광복을 20여 일 앞둔 1945년 7월 24일 부민관 폭파 의거를 결행했다.
부민관 의거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립극장인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자리)에서 친일 부역자이자 정치깡패인 박춘금 등의 주최로 일본 고위...
“강제 모금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며 있을 필요도 없었다. 경제인들 스스로가 상호 협의 조정해 결정했다.”
‘5공 비리의 축소판’인 일해재단의 설립과 기금 모금을 주도한 장세동(1936.9.27~ )은 1988년 일해재단 청문회에서 ‘모르쇠’로 일관했다. 하지만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 강제성을 폭로하면서 거짓임이 드러났다. “내라고 하니까 내는 게...
“전쟁이 끝나면 고향인 안성으로 돌아가 중학교 수학 교사로 조용히 살고 싶다.” 창씨개명도 하지 않고 떳떳하게 조선인임을 밝히면서도 일본군 중장에까지 올랐던 홍사익의 꿈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조선인으로는 유일하게 필리핀에서 B급 전범으로 생을 마감해 물거품이 됐다.
일본 육군사관학교와 일본 육군대학을 거쳐 조선인 평민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일본...
‘마음이 죽어버린 것보다 더 큰 슬픔이 없고, 망국(亡國)의 원인은 이 마음이 죽은 탓이다.…우리의 마음이 곧 대한의 혼이다. 다 함께 대한의 혼을 보배로 여겨 소멸되지 않게 하여 먼저 각자 자기의 마음을 구해 죽지 않도록 할 것이다.’
대한제국의 군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신규식(申圭植, 1880. 1. 13~1922. 9. 25)은 이 ‘한국혼’의 철학으로 목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경영학을 공부한 놀부(자본가)와 의식화를 학습한 흥부(노동자)가 공존공영하도록 돕는 게 경제학이라며 힘 없고 돈 없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를 평생의 화두로 삼았던 정운영. 정통 마르크스 경제학을 소개한 진보 경제학자인 그는 최고의 논객이자 당대의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다.
충청남도 온양시(현재 아산시)에서 태어난 정운영(1944. 3. 18~2005. 9. 24)은...
1954년 대통령배 제1회 한국 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로 창설돼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가장 긴 허정구배 한국아마추어골프대회. 이 대회는 한국 골프의 기틀을 마련하고 대한골프협회와 한국프로골프협회 등을 이끌었던 허정구 회장을 기려 2003년부터 허정구배로 치러지고 있다.
허정구(1911.8.6~1999.9.23) 전 삼양통상 명예회장은 한국 골프의 아이콘이며...
당시 그가 받은 원고료는 200만 원으로, 오늘날의 아파트 한 채에 해당하는 큰돈이었다. 1967년 처음 내놓은 ‘성문종합영어(당시 정통종합영어)’는 1970~80년대 ‘영어 바이블’로 대박을 터트렸고, 이후 성문출판사를 만들어 성문 시리즈를 출간했다.
그의 문화재 사랑은 1970년대 초부터 시작됐다. 귀중한 고서나 고문서들이 도배지 등으로 사라지는 걸 보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