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록펠러도 직전에 두 자녀를 낳은 부인과 결별, 마가레타는 한꺼번에 두 가정을 깨뜨린 여성으로 화제를 모았다. 공화당의 거물급 정치인으로 가문의 후광을 입은 록펠러가 번번이 대선 후보가 되지 못한 것은 이 스캔들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었다.
한편, 록펠러는 1974년부터 1977년까지 부통령을 지낸 후 정계에서 은퇴했다.
그럼에도 발렌베리, 로스차일드, 록펠러 가문이 수대(代)에 걸쳐 세계적인 명문가로 칭송 받는 비결은 뭘까. 바로 진정성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사회와의 교감은 나눔에서 시작 = 발렌베리는 스웨덴 최대의 그룹이자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기업이다. 지난 158년간 ‘도덕적 의무’를 충실히 수행한 결과다.
발렌베리 그룹 산하...
◇10세에 금주·금연 서약서… 근검절약 강조한 록펠러 가문 = 33세에 석유왕으로 불리며 백만장자가 된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유행병처럼 번지던 사치를 극도로 혐오했다. 외아들인 록펠러 2세에게 매주 많지 않은 돈을 주고서 용돈 기입장을 쓰도록 철저하게 교육했고, 아들이 열 살이 되던 해에 술과 담배를 멀리하겠다는 서약서까지 받았다.
록펠러 2세 역시 어려서부터...
그러나 후반기 43년은 정말 행복하게 살았다.”
록펠러가 숨을 거두기 직전 남긴 이 한 마디에 록펠러 가문이 ‘최고의 부자’와 ‘나눔의 기업’ 두 가지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던 이유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록펠러 가문을 오늘의 명문가로 일으킨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55세부터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라는 문구를...
록펠러 가문이 200여년간 최고 부자의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절약의 미덕을 항상 강조했기 때문이다.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엄청난 부를 쌓았음에도 불필요한 낭비를 절대로 하지 않았다.
향락과 사치의 소비 문화가 팽배한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당시에도 록펠러는 돈을 함부로 쓰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유행처럼 번지는 사치를 극도로 혐오했다....
◇석유왕 록펠러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록펠러 가문을 명문가로 일으킨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석유왕’으로 유명하다. 그가 1870년 설립한 오하이오 스탠더드 오일은 미국의 경제부흥과 함께 록펠러 가문에 부와 명성을 안겼다.
록펠러는 공익을 위한 자선사업으로 더욱 유명하다. 6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록펠러1세의 유언은 ‘나눔’으로 귀결된다. 30대에...
메디치 가문은 현대사회의‘예술·문화·과학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뜻하는 메세나의 원조라 할 수 있다.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기업의 문화·예술활동에 대한 지원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미국의 경우 1967년 록펠러재단 주도로 기업예술지원위원회가 결성됐다.
1967년 미국에서 출범한 예술지원기업위원회(BCA·Business Committee for the Art)는...
한화 미국 중소형주 펀드는 록펠러 가문의 패밀리 자금 운용으로 유명한 미국의 록펠러(Rockefeller & Co.) 에서 위탁운용을 맡아 125년에 걸쳐 축적한 리서치 및 운용 노하우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한화 미국 중소형주 펀드에 가입을 원하는 투자자는 전국 한화투자증권 지점을 통해 가입 가능하다.
당시는 석유왕 존 록펠러의 석유 트러스트를 본 따 온갖 트러스트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던 시절. JP모건은 트러스트 중의 트러스트라 불리며 모건 제국을 이룩했다.
“기원전 신이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1901년에 JP모건과 록펠러가 지구를 바꿔버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1914년 월스트리트에 들어선 본사는 ‘모건 관저’로 불리며 세계 금융을 지배하는...
◇삼성생명, CEO 후계자 프로그램 강점
삼성생명의 ‘패밀리오피스’는 와 자녀 재무관리, 명예ㆍ가치, 커뮤니티 관리 등 가문의 종합적인 자산관리를 맡는다. 삼성생명의 ‘패밀리오피스’는 크게 4개 서비스로 나뉜다. 먼저 △수익성 뿐만 아니라 리스크, 자금활용 계획 등을 종합 설계해주는 자산관리 서비스 △초부유층 자녀들에 대한 후계자 양성을 담당하는...
미국의 록펠러 가문이나 카네기 가문처럼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집안이 나오도록 지원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삼성생명은 11일 서울 역삼동 강남파이낸스센터에서 30억원 이상 금융자산을 가진 고객에 가문 관리 서비스를 해주는 ‘삼성패밀리오피스’를 열고 초부유층(VVIP) 마케팅에 나섰다.
총 25명 규모로 서울 강남권부터 시작하며 내년에는 서울 강북권...
록펠러 가문도 시카고 대학과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기아근절과 교육 등에 많은 공헌을 해오고 있다.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는 ‘기부 라이벌’이다. 워렌 버핏은 지난 7월 15억달러 규모의 버크셔해서웨이 주식 1930만주를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전 CEO 역시 280억달러를 사회에 기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명문가 록펠러 가문의 5대손인 스티븐 C. 록펠러 주니어가 클럽모우에 지분을 투자하고, 운영을 자문을 한다.
클럽모우가 올 개장을 앞두고 모집하는 창립회원은 300명. 분양가는 1억5000만원이다. 정회원은 주중 예약권이 있는 가족회원을 1명 둘 수 있다. 정회원과 가족회원 모두 주중, 주말 그린피가 1만원이다. 정회원의 동반자 전원은 주중...
현재 버핏과 게이츠 등 40명이 기부할 돈은 최소 1500억달러, 한화로 175조원에 이른다.
앞서 세계 최대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시스코의 존 모그리지 전 회장과 록펠러 가문의 데이비드 록펠러,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 뉴욕시장 마이클 블룸버그도 등이 이미 자신의 재산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서명했다.
13회에 걸쳐 글로벌 로열패밀리의 역사와 자본 그리고 그들의 영향력을 분석한다)
미국 자동차 명가 포드 가문은 107년 역사를 통해 세계 자동차 역사의 출발이자 대중화의 아이콘으로 표현된다.
자동차의 아버지 헨리 포드는 석유왕 록펠러, 철강왕 카네기 그리고 철도왕 밴더빌트와 함께 미국 근대 산업의 발전을 이룬 대표적인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세계 2차대전 당시 모건과 록펠러 가문이 자본력을 바탕으로 참전을 유도했다며 “두 가문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도록 부추겨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고 언급했다.
모건가는 명예의 상징인 노벨상에도 자본의 씨를 뿌렸다. 미국 대통령, 정부 관계자들에게 노벨상이 돌아간 배경에는 모건가와 록펠러의 돈줄이 작용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록펠러가문의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가 반트러스트법 제정으로 34개의 독립회사로 해산된 것처럼 모건가 역시 분리 과정을 거쳐야 했다.
1933년 여수신 전문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는 글래스-스티걸법이 제정된 것이다.
JP모건은 1935년 여수신 전문회사로 남게 되고 모건스탠리는 투자은행으로 분리 결정됐다. 모건스탠리는 JP모건의 인물들이 1935년 창립했고...
‘더러운 돈’을 모았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던 록펠러가문은 기부를 터닝포인트로 삼았다.
록펠러 재단, 시카고대학 설립, 록펠러 의료 재단, 록펠러 연구소 등을 설립하며 가문에게 닥친 오명의 쇄신을 꿈궜다.
가문의 이미지 개선에 가장 힘썼던 인물은 외아들 록펠러 2세.
록펠러 1세의 아들 존 데이비슨 록펠러 2세는 재력을 바탕으로 많은 기관들을 설립...
록펠러 가문의 영광은 존 데이비슨 록펠러 1세(1839∼1937)의 회계장부로부터 시작된다. 열악한 가정환경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록펠러는 일기 대신 회계장부를 적으며 하루를 셈으로 매듭지었다.
평범한 기업인이었던 그에게 갑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은 기름이었다.
대규모 유전 발견 이후 록펠러는 1863년에 클리브랜드에 정유회사를 설립했고 1870년...
그의 죽음과 관련 일본 작가 히로세 다카시는 1986년 출간된 ‘제 1권력’을 통해 전세계 금융과 산업자본의 지배자였던 모건과 록펠러의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해 화제를 모았다.
1962년 당시 모건과 록펠러의 연합계열이었던 US스틸과 베들레헴스틸이 철강 가격을 올리려 하자 케네디 대통령은 이들 기업에 대한 철강 주문을 중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