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도 전임자였던 김중수 전 총재에 대한 평이 워낙 나빴던 탓에 그의 취임을 ‘중수’가 가고 ‘상수’가 왔다고 평하기도 했었다. 다만 이 총재에 대한 수식어는 오래지 않아 ‘학생’으로 폄하됐다.
이 같은 평가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의 실기(失機)가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판단이다. 우선 그가 취임 일성(一聲)으로 강조했던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이중식 신임 정책보좌관은 김중수 전 총재시절 승승장구했던 인물. 지난달 30일 이 총재의 마지막 정기인사에서 화합차원에서 화려하게 복귀하게 됐다. 민 신임 정책보좌관 역시 금융시장국 등 주요요직을 거쳤던 인물이다.
후임 기재부 파견에는 황인선 전 국고증권실장이 유력하다. 현재 고위공무원단 역량평가 심사를 거치고 있는 중이다.
한편 조사국장을 맡아왔던...
이 신임 정책보좌관은 이 총재 전임자인 김중수 전 총재시절 발탁 인사를 통해 승승장구했던 인물. 전승철 부총재보와 퇴임한 서영경 부총재보, 유상대 국제협력국장, 신운 금융안정국장, 성병희 공보관 등 김 총재가 발탁한 독수리5남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에 따라 전 보를 빼고 이 신임 정책보좌관을 넣어 독수리5남매로 부르기도 했다. 이 총재 취임직후 미국과...
김중수(사진 왼쪽) 전 한국은행 총재(현 한림대 총장)가 모친상을 당한 가운데 이주열(사진 오른쪽) 현 한은 총재가 상가를 방문해 조문하면서 둘 사이에 화해무드가 조성되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20일 김 전 총재의 모친은 91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상가가 꾸려진 가운데 김 전 총재는 공식적으로 부고도 내지 않았다. 발인날짜는 22일.
21일...
최근 알려진 대표적 사례는 전임 김중수 총재 재임시절인 2013년 5월이다. 직전월에 4대3의 표결 끝에 동결됐던 기준금리는 결국 5월에 당시 임승태 위원이 돌아서면서 인하로 결정됐다. 김 전 총재는 당시 동향보고회의를 전후로 임 위원 설득에 나섰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후문이다.
통상 오전 9시에 시작하는 이 회의는 점심 무렵 끝난다. 이달처럼 수정경제전망이...
신운 신임 국장은 김중수 전 총재 시절 발탁인사를 통해 조사국장에 오른 인물. 다만 그가 주로 조사국에서 요직을 거쳤다는 점에서 금안국장 인선은 다소 의외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한은 관계자는 “한은 목표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다. 정책부서 업무가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는게 아니고 보완관계에 있다. 금안국 경력이 없어 부서장으로 적합하지...
전임 김중수 총재가 등한시했던 공보라인을 강화코자 한 포석이었으며 이후 그는 2015년 발권국장을 거쳐 2017년 현 기획협력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1963년생으로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1988년 한은에 입행했다.
신 국장도 국방대학원 연수를 마치고 이 총재 취임 후 처음 생긴 정책보좌관을 거쳐 2015년 금융시장국장을 역임했다. 이후 2016년 본인의 주특기라 할 수...
당시 김중수 총재는 의사록에서 “금리 결정에 있어 다각도로 고려해야 한다”며 여섯 가지 동결 이유를 들었다.
역대 금통위 중에서 부총재가 소수의견을 낸 적도 2004년 11월 금리인하 당시 이성태 부총재가 유일하다. 다만 실제적으로는 당시 박승 총재도 반대했다. 당시 사건은 ‘금통위원들의 반란’으로 지금까지도 언급되고 있다.
한은 총재 추천 금통위원...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명박 정부가 앉힌 김중수 전 한은 총재는 총재 취임 전부터 “한은도 정부”라고 언급했고,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정통 한은맨 출신 이주열 현 총재도 지난해 “나도 이 정부(박근혜 정부) 사람”이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전문가 집단으로서 외부의 주장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앞선 보고서의 평가와는 달리 정권의 입맛에 맞는 결정을 계속해...
당시 회동은 전임자였던 김중수 전 한은 총재와 당시 박근혜 정부가 껄끄러운 관계였다는 점에서 이 총재 취임을 맞아 기재부와 한은 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됐다.
반면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취임한 2014년 중반 이후 기재부와 한은 간 관계는 급격히 기재부 쪽으로 기운다. 최 부총리 취임 직후 서울 세종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양 기관 수장은...
당시 회동은 전임자였던 김중수 전 한은 총재와 당시 박근혜 정부가 껄끄러운 관계였었다는 점에서 이 총재 취임을 맞아 원만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차원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후 현 부총리가 물러나고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취임하면서 기재부와 한은간 관계는 급격히 기울었다. 최 부총리 취임직후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양 기관 수장 회동은 사실상...
2012년 500회 특강에는 김중수 당시 한은 총재가 ‘글로벌 경제 환경 변화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직접 강연에 나서기도 했다.
금요강좌를 들으면 쿠폰 1장을 받는다. 한은은 25장의 쿠폰을 모은 이들에게 경제기본과정 수료증을, 50회를 들은 사람들에게 경제전문과정 수료증을 각각 발급하고 있다. 공식 자격증은 아니지만 올 5월말 기준으로 기본수료증을 받은...
전임 김중수 총재와 대립각을 세웠던 이 총재가 2014년 4월1일부로 취임하면서 당시 박원식 부총재는 이 총재 취임 한 달여 만에 중도 사퇴 했다. 그의 임기를 1년여 앞둔 상황이었다.
이후 그해 6월25일 임명된 장병화 현 부총재가 오는 6월24일 임기를 만료한다. 금통위원 중 부총재 임기만 유일하게 3년으로 차기 부총재가 곧바로 임명될 경우 그의 임기는 2020년...
앞서 이주열 총재 전임과 전전임이었던 김중수·이성태 총재는 임기 1년을 앞두고 정권이 바뀌면서 어려움을 겪어온 바 있다. 또, 김 전 총재가 재임시절 내부조직을 흔들었고 이 총재가 이를 추스르는 과정에서 부총재와 부총재보가 중도 사임하는 등 사태를 겪으며 내부 앙금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반면 1952년생으로 현 이주열 총재와 나이가 같을 만큼 많다는...
이에 따라 당시 한은 총재였던 김중수 전 총재는 금리인하를 사실상 끝까지 반대하기도 했다. 당시 금리인하 직전월인 그해 4월 동결 4명 인하 3명으로 아슬아슬하게 동결 결과를 내놨고, 김 전 총재도 의사록에 동결의견을 남기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이한구 원내대표는 김 전 총재를 향해 “청개구리”...
유 국장과 차 국장은 전임 김중수 총재 시절 중용됐던 이들로 이주열 총재가 이들을 본부로 복귀시키면서 임기 후반기 포용적 인사를 단행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발권국장에는 발권정책팀장 출신으로 이 분야 전문가인 박운섭 전 강남본부장이, 기획협력국장에는 박성준 전 발권국장이 이름을 올렸다.
이번 한은 인사에서 승진자는 1급 8명, 2급 16명, 3급 21명, 4급...
이 총재가 부총재 시절에 김중수 총재를 겨냥해 쓴 소리를 할 정도였다.
이 부총재는 “60년에 걸쳐 형성된 고유의 가치와 규범이 하루아침에 부정되면서 혼돈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졌다”며 당시 한국은행 개혁을 주도했던 김중수 총재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는 이 총재가 1977년 한은에 입행한 뒤 해외조사실장, 조사국장, 정책기획국장, 부총재보 등을 지내며 한은 내에서...
앞서 김중수 전임 총재 시절 금 보유량 확충 계획을 세우고 2011년부터 공격적으로 금을 매입한 바 있다. 이에 따라 2010년 14.4톤에 불과했던 금 보유량은 현재 104.4톤 규모로 불어났다. 장부가 기준으로 49억9000만 달러 수준이다.
하지만 한은이 금을 사들였던 2011~2012년 금값은 역대 최고가 수준인 온스당 1660~1900달러였다. 최근 금값이 올랐지만 여전히 손실을...
흡사 김중수 전 총재가 추천한 문우식 전 위원의 판박이라는 느낌이다.
그는 “국제경제가 더딘 회복세를 보인 가운데 일시적 안정을 찾은 것 같고 국내 경기도 내수를 중심으로 현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거시정책을 통해 경기침체를 예방하고 원활한 구조조정을 지원할 수는 있겠으나 구조조정을 대신할 수 없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고...
바로 전임 김중수 총재 재임당시 소위 인사혁신이라는 칼날아래 사실상 팽 당해 한직으로 물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김 전 총재 재임시절 당시 소위 잘나갔던 인사들 중 상당수는 김 전 총재에게 밉보였다는 이유로 이처럼 한직으로 밀려났었다.
이주열 총재도 2012년 당시 부총재 퇴임사에서 김 전 총재를 비판했다가 소위 대가를 치루기도 했었다. 부총재 퇴임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