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는 구인회 창업회장이 첫 사업을 시작했던 ‘구인회 상점’ 인쇄광고, 여수공장 건축 허가서, 사보 창간호 등 실물자료를 중심으로 150여점이 전시된다.
LG화학은 2016년 하반기부터 역사적 가치가 높은 기업활동 자료를 발굴하고 보존하기 위해 ‘디지털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진행, 지금까지 문서∙사진∙영상∙제품 등 2만여점의 자료를 수집했다....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고 구본무 회장의 사촌동생인 구본걸 회장은 LG패션이 계열분리를 완료하고 LG그룹으로부터 완전 독립한 2008년 LG패션을 맡기 시작했다. 남성복 위주였던 LG패션의 사업구조를 여성복·캐주얼·아웃도어 등으로 넓혔고 중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 사업에도 적극 나섰다.
2014년 LG패션에서 LF로 사명을 변경한 뒤에는...
선친이 별세한 지 41일째 되는 날 '창업주' 구인회 전 회장과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회장에 이어 사실상 그룹 총수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앞서 구광모 대표는 중소식품회사 보락의 정기련 대표 맏딸인 정효정씨와 결혼했다.
LG그룹과 보락의 사업 협력 확대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구인회, 구자경, 구본무 회장으로 이어온 LG 그룹의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구 상무가 그룹 총수로 경영 전면에 나서는 것이다.
이사회에선 구 상무가 그룹 내에서 맡게 될 직급도 결정한다. 재계에서는 구 상무가 사장이나 부회장 직급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주사 대표로서 보좌를 받아야 할 전자·화학·디스플레이 등 그룹 핵심 계열사의...
또 LG는 구인회 LG 창업회장의 독립운동 자금 지원으로 시작된 LG의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 LG의 사업 역량을 활용해 관련 시설 개보수 및 유공자 지원사업 등에 앞장서고 있다. LG하우시스는 LG의 독립운동 정신을 이어 받아 2015년 중경 임시정부 청사 및 서재필 기념관 등 개보수 사업에 이어, 지난해부터는 ‘독립유공자 주거환경 개선’ 지원 사업도 새롭게...
LG 창업주인 고(故) 구인회 회장, 고인의 아버지인 구자경(93) 명예회장의 뒤를 이은 3세 경영자로 LG그룹을 23년간 이끌어온 만큼 재계에선 회사장을 예상했었다. 그러나 구 회장이 살아온 궤적에 따라 유족들은 가족장으로 결정했다. LG그룹 측은 “장례는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를 원했던 고인의 유지와 유족들의 뜻에 따른 것”이라며 “가족 외의 조문과 조화는...
실제 1969년 12월 31일 구인회 창업회장이 세상을 떠나자 구인회 창업주의 바로 아래 동생인 구철회 당시 락희화학 사장은 1970년 1월 6일 럭키그룹 시무식에서 장조카인 구자경 금성사 부사장을 그룹 회장으로 추대하면서 동시에 경영일선에서 퇴진했다.
퇴진한 구철회 사장은 1999년 LG화재해상보험(현LIG화재의 전신)으로 독립했다. 넷째 동생인 구태회 LS전선...
1945년 2월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구 회장은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고 구인회 LG 창업주의 장손이다. 그는 LG그룹을 세계적인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은 탁월한 경영인이었다. 구 회장은 연 매출 30조 원이던 내수기업 럭키금성을 연 매출 160조 원의 글로벌 기업 LG로 키웠다. 구 회장 타계 소식에 네티즌들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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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LG가(家) 3세대 총수'로 지난 1995년부터 그룹 회장을 맡았다.
연세대를 다니다가 미국 애슐랜드대 경영학과와 미국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잇따라 졸업한 뒤 ㈜럭키에 입사했으며, 이후 럭키 유지총괄본부장에 이어 금성사 이사, 럭키금성 기획조정실 전무...
구 명예회장은 고(故) 구인회 창업회장의 장남으로 그룹 2대 회장을 지냈다. 1925년 출생해 올해로 만 93세를 맞았다.
구 명예회장은 1995년 2월 LG그룹 총수 자리를 맏아들인 구본무 회장에게 물려준 이후에는 2선으로 물러나 천안연암대학 인근 자택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워낙 고령인지라 거동이 편치 못해 이날도 아들의 임종을 지키지 않고 천안 자택에 머문...
구 회장의 할아버지인 고(故) 구인회 LG 창업주는 1931년, 포목을 취급하는 구인회 상점을 운영했다. 그러다 해방 이후 허만정 GS그룹 창업주를 만났다. 당시 허만정 창업주는 구인회 창업주 장인의 6촌이자 성공한 만석꾼이었다.
허만정 창업주가 구인회 창업주를 만난 이유는 아들인 허준구 전 LG건설 명예회장의 경영수업을 맡기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이...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LG가(家) 3세대 총수'인 고인은 지난 1995년부터 그룹 회장을 맡았다.
연세대를 다니다가 미국 애슐랜드대 경영학과와 미국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잇따라 졸업한 뒤 ㈜럭키에 입사했으며, 이후 럭키 유지총괄본부장에 이어 금성사 이사, 럭키금성 기획조정실 전무...
1969년 12월 구인회 LG그룹 창업주가 갑작스레 타계하자 그의 첫째 동생인 구철회 락희화학 사장은 이듬해 1월 그룹 시무식을 통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어떤 혼선이나 잡음도 있어선 안 된다.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구자경 부회장을 제2대 회장으로 추대하자”고 말했다. 당시 구자경 부회장(현 LG그룹 명예회장)은 45세에 불과했다....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LG가(家) 3세'인 구 회장은 1995년부터 그룹 회장을 맡았다. 최근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에게 사실상 그룹 경영을 맡기고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구 회장의 병세가 얼마나 위중한지는 알 수 없다"면서 "일각에서는 위독하다는...
LG는 구인회 LG 창업회장의 독립운동 자금 지원으로 시작된 LG의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 LG의 사업 역량을 활용해 관련 시설 개보수 및 유공자 지원사업 등에도 앞장서고 있다. 구인회 LG 창업회장은 1942년 중경 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찾아온 ‘백산 안희제’ 선생에게 1만 원을 희사했다. 구 창업회장은 ‘나라를 되찾고 겨레를 살리자는 구국의 청에...
구 부회장은 고(故)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의 아들이며, 구 명예회장은 6형제인 구인회 LG 창업주의 막내동생이다.
LS그룹은 사촌 형제끼리 번갈아가며 그룹을 경영하는 ‘사촌 경영’을 하고 있다. 이에 재계에서는 구 부회장의 지주사 합류는 차기 회장직 수행을 위한 포석으로 풀이되고 있다.
LS는 LG그룹에서 분리한 뒤 고(故)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1969년 구인회 창업주가 타계한 이후 장남 구자경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했고, 장손인 구본무 회장이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최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지배구조 차원에서 가장 모범적인 곳은 LG그룹”이라며 “국내에서 가장 먼저 지주회사 체제를 확립한데다 총수 일가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이 거의 없다”고 밝혔다.
◇LG그룹 국내 최초...
여기에 LG그룹 창업주인 고(故) 구인회 회장과 부친인 춘강(春崗) 구재서 공(公)의 독립운동 정신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중경임시정부 청사 복원사업을 비롯한 독립운동 관련 시설, 국가유공자 지원 사업이 대(代)를 잇는 LG의 지원으로 계승되고 있어서다.
오뚜기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을 비정규직으로 쓰지 말라”는 고(故) 함태호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에 따라...
한편 LG는 구인회 LG 창업회장의 “나라를 되찾고 겨레를 살리자는 구국의 청에 힘을 보태는 것이야말로 나라를 돕는 일”이라는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해 관련 시설 개보수 및 유공자 지원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구 창업회장은 1942년 중경 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해 찾아온 백산 안희제 선생에게 1만 원을 희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