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고노담화 검증의 민낯

입력 2014-07-2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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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남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정치학

역사 왜곡, 독도영유권 주장, 전범 숭배도 모자라 일본 정부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담화(1993)마저 훼손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난달 공개한 고노담화 검증결과 보고서는 고노담화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한·일 간 정치적 타협의 결과라는 일본 우익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일본 정부가 고노담화 작성 당시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연행을 사실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인식으로 임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고노 요헤이 당시 일본 관방장관의 위안부 강제연행 인정 발언을 뒤엎는 것이다. 아베 일본총리는 2012년 8월 자민당이 집권하면 고노 담화 등 과거 일본의 사죄를 담은 역사 반성 3대 담화를 모두 재검토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아베의 이 발언은 고노담화 검증결과 보고서의 출현을 이미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일본 정부의 고노담화 검증결과 보고서는 왜곡 덩어리이다. 5명으로 구성된 검증 팀에는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이라고 주장해 온 일본의 극우 역사학자 하타 이쿠히코 전 니혼대(日本大) 교수만 포함되고 하타와 반대 입장의 양심적 역사학자들은 배제되었다. 검증 팀의 나머지 4명은 모두 과거사 문제의 비전문가였다. 하타 전 교수가 쓴 ‘위안부와 전장(戰場)의 성(性)’은 아베 총리 등 일본 우익의 열독서이다.

일본 정부의 이번 고노담화 검증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전체 역사적 사실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 검증대상을 고노담화 작성 과정 중 한·일 간 외교교섭에 집중하여 고노담화가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해석될 수 있도록 의도하였다. 일본 정부는 또한 위안부 피해자들이나 교섭 당사자 등 한국 측 관련자들은 배제한 채 일본 정부 관계자와 일본의 자료들만 검토하였다.

이러한 검증 과정은 이미 예정된 결론을 위한 수순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이번 보고서에는 피해자 증언 청취에 대한 평가 자체를 포함하지 않았다. 이번 고노담화 검증결과 보고서는 일본 정부의 관점에서 편집한 주장을 마치 외교적인 사실인 것처럼 공개하였다. 일본의 우익 언론들은 이러한 일본의 자의적 주장이 담긴 보고서를 근거로 고노 담화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노 담화는 무라야마 담화와 함께 한·일 관계개선의 토대를 형성한 것이었다. 일본이 역사적 진실을 호도하는 억지 주장을 펴면 펼수록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여론이 일본에게 더욱 불리해질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에 미국에서 7번째 위안부 소녀상이 설치되고, 로스앤젤레스와 디트로이트 등에도 소녀상이 추가로 건립되려는 움직임이 하나의 증거이다. 미국, 중국, 독일, 싱가포르, 호주 등의 언론과 정치 지도자들이 일본의 역사 호도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고노담화 검증결과 보고서는 악화된 한·일 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네덜란드, 호주 등 여러 나라에 존재하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를 지워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중국 지린성 기록보관서에서는 올해 일본군의 위안부 직접 동원 증거가 57건이나 발견되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일본군위안부문제아시아연구대회도 올해 일본군의 위안부 징집과 관련된 공문서 529점을 공개했다. 유엔도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여러 차례 인정하였다. 미국, 유렵연합, 호주 등의 의회는 관련 결의문도 채택하였다.

이웃 나라를 불법적으로 침탈한 역사를 호도하는 한 일본은 세계평화, 인권 등 인류 보편적 가치를 논할 자격이 없다. 일본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진출을 꿈꾸기 전에 먼저 역사적 진실을 존중하는 정상 국가부터 되어야 한다. 고노 담화는 일본이 이웃나라 국민들에게 저지른 범죄행위를 인정하고 사과함으로써 피해 국가들과 화해할 수 있는 첫걸음이었다. 그것을 훼손하려는 것은 역사적 진실을 아는 국제사회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독일의 전후 역사문제 처리와 피해자 보상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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