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선거도 아닌 선거

입력 2014-06-1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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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ㆍ전 청와대 정책실장

지방선거가 끝난 뒤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서울시장 후보들의 주요 공약이 무엇이었냐고.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하다 곧 가로저었다. 생각이 잘 나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뭘 보고 투표를 했을까? 대통령과 한편이라 찍고, 그 반대편이라 찍고, 이 후보 미워 저 후보 찍고, 기왕에 하던 사람이라 찍고 했단다. 저쪽 미워 이쪽 찍는 ‘네거티브 투표’에 정책적 판단 없이 찍는 ‘무뇌 투표’ 그리고 감정과 정서로 찍는 ‘감성 투표’ 이것을 선거라 하고 투표라 할 것인가.

맑아지기는 했다. 관권 선거도 없어졌고 돈봉투도 거의 사라졌다. 냅다 ‘고향 앞으로’ 내지르던 지역구도도 조금은 완화되었다. 그래서 그런 대로 기대를 걸어 볼 만했다. 지방자치 발전과 지역사회 비전이나 전략을 놓고 고민하는 그런 선거 말이다.

그러나 역시, 그 모양 그 꼴이었다. 돈봉투가 사라지고 지역구도가 완화된 자리에는 다시 엉뚱한 것들이 들어왔다. 좌우 편 가르기와 세대 편 가르기, 그리고 생각 없이 겉모양이나 스타일만 보고 표를 던지는 태도들이었다.

지방자치 문제도 지역사회 문제도 뒤로 가 버렸다. 한쪽은 세월호 사건에 올라 타 대통령과 정부를 응징하자 소리쳤고, 다른 한쪽은 선거에 지면 대통령이 식물인간이라도 되는 양 겁을 주었다. 지방선거에 ‘지방’은 없었다. 정책도 없었다.

여기에 ‘네거티브’ 공격이 더해졌다.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 같은 꼴에 같은 짓을 하면서 서로 삿대질을 해댔다. 누구 아들의 막말이 타깃이 되고, 누구 부인의 성형 여부가 타깃이 되었다. 누구의 딸은 스스로 ‘배신자’ 아버지에게 칼을 겨눴다. 선거 무대는 이들로 인해 뜨거웠다.

겉모양을 만들기 위한 ‘쇼’와 ‘퍼포먼스’도 화려했다. 안 가던 전통시장을 찾은 후보가 있는가 하면 주변의 누가 들어도 될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는 후보도 있었다. 감동 받은 사람도 있겠지만 냉소가 깊어진 사람도 많았다. 물론 감동도 냉소도 편을 따라 갔다.

이래서 되겠는가.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풀어야 할 문제는 엄중하다. 서울만 해도 국가와 국가가 경쟁하던 시대를 넘어 지역과 지역이 경쟁하는 시대에 있다. 아시아와 동북아의 허브가 되느냐를 놓고 도쿄, 상하이, 싱가포르 등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도시구조와 산업구조 등 모든 것이 다 달라져야 하는 문제다. 또 나라의 미래가 달린 문제다.

뿐만 아니다. 개방성과 다양성을 높이는 일, 그러면서도 공동체를 살리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일, 또 지방정부의 맏형으로 시대에 맞는 중앙-지방 관계를 만들어 내는 일 등을 해야 한다. 이렇게 ‘네거티브 투표’에 ‘무뇌 투표’ 그리고 ‘감성투표’로 선거를 치러도 괜찮은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찌 보면 오늘에 있어 대의민주주의와 선거제도 그 자체가 지닌 문제이기도 하다. 정책 문제가 점점 더 어렵고 복잡해지면서 정당과 후보 그리고 유권자 모두의 문제로부터 멀어지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풀고 해결하는 것은 물론 이해하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어려운 일, 즉 문제에 대한 고민은 뒤고 가고 있다. 그 대신 쉬운 일, 즉 패거리 짓고 네거티브 공격하고, ‘쇼’와 ‘퍼포먼스’로 이미지-업 하는 일은 앞으로 나온다. 미국만 해도 네거티브 공격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선거 광고의 80% 이상이 네거티브 공격으로 분류될 정도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관찰된다. 말로는 정책 선거를 외치지만 그게 그렇게 잘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이들 국가와 또 다르다. 잘못된 현상을 잘못된 것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심지어 학자들까지 선거기간 내내 누가 이기는가에만 관심을 두었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도 대통령이 타격을 입었는지, 누가 대선 주자로 부각되었는지 따위만 이야기된다.

원인과 대안을 찾는 것은 두 번째다. 우선 잘못을 잘못으로 봐야 한다. 이기고 지고의 문제를 넘어 이번 선거의 의미를 다시 짚어 봐야 한다. 잘못을 잘못으로 알지 못하는 한 이 나라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미래는 없다. 선거를 백 번 치러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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