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라, 최요삼! [오상민의 현장]

입력 2014-02-0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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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들뜬 오후였습니다. 거리 곳곳엔 캐럴이 울러 펴졌고, 가는 곳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였죠. 온 세상이 축제분위기에 흠뻑 젖어 있던 2007년 12월 25일 성탄절 오후, 서른세 살 노장 파이터는 비장한 각오로 링 위에 올랐습니다.

세계복싱기구(WBO) 인터콘티넨탈 플라이급 챔피언 최요삼입니다. 그는 1차 방어전에서 헤리 아몰(인도네시아)을 맞아 일방적인 경기를 펼쳤습니다. 마지막 12라운드 종료 직전까지만 해도 말이죠.

그러나 믿기 힘들 일이 일어났습니다. 도전자 헤리 아몰의 오른손 훅이 최요삼의 얼굴에 적중되는 순간 장내는 싸늘해졌습니다. 최요삼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뚜기처럼 일어났지만 더 이상의 경기 진행은 어려워보였습니다. “땡땡땡!” 다행히 경기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습니다.

최요삼은 이 처절한 승부를 승리로 장식하며 챔피언벨트를 지켜냈습니다. 그러나 최요삼은 몸을 가눌 힘도,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정신도 없었습니다. 경기 종료 직후 뇌출혈로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그리고 6년이 지났습니다. 안타깝지만 최요삼은 우리 곁에 없습니다. 더 이상 독사 같은 눈빛도, 승리를 향한 열정과 도전도, 챔피언의 여유로운 미소도 볼 수 없습니다. 2008년 1월 3일, 그의 심장은 그렇게 멈췄습니다. 링에서 쓰러진 후 9일 만입니다.

그는 한국 남자 프로복싱 마지막 챔피언이자 영원한 챔피언입니다. 그가 떠난 지 벌써 6년이 지났지만 그의 빈 자리를 채워줄 챔피언은 단 한 명도 탄생하지 않았습니다. 선수도, 스폰서도, 복싱팬도 크게 줄었습니다.

두 주먹으로 기적 같은 인생을 살아온 최요삼은 한국 프로복싱에 불어 닥친 한파를 온몸으로 느끼며 버텨왔습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기적이었죠. 복싱 입문 2년 만에 한국챔피언이 됐고, 3년 만인 1996년에는 동양챔피언에 올랐습니다. 1999년에는 사만 소루자투롱(태국)을 꺾고 세계복싱평의회(WBC) 라이트플라이급 세계챔피언이 됐습니다.

4차 방어전(2002)에서 호르헤 아르세(멕시코)에게 져 은퇴를 고민했지만 포기란 없었습니다. 무려 5년 동안 칼을 갈았고, 결국 챔피언벨트를 되찾았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최요삼의 심장은 멈췄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장기는 6명에게 이식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곁 어딘가에 살아 있습니다. 포기를 몰랐던 그의 도전정신도 우리의 뜨거운 가슴에 녹아 있습니다.

사실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벌써 6년…. 아니 겨우 6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의 이름 석자가 희미해지려 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이제 와서 그의 이름을 불러본들 무슨 소용이냐고요? 아니요.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됩니다. 두 주먹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그는 열정과 투혼은 위기에 처한 한국 프로복싱과 온갖 비리에 찌든 체육단체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지금이야말로 그의 뜨거운 열정과 투혼이 필요한 때입니다.

최요삼이 다시 한 번 링 위에 오를 때까지, 어려움에 처한 한국 프로복싱에 새 바람이 일어날 때까지 그의 이름을 외칠 겁니다. “일어나라, 최요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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