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세부담이 가중된 영세 음식업점들의 거센 반발에 농수산물 식자재를 구입할 때 세액공제 받을 수 있는 한도를 최대 50%까지 높여주기로 한 것이다. 지난 8월 세법개정안을 통해 매출액의 30%까지만 공제해주기로 했던 기존 방침에서 한발 물러서면서 그간의 서민증세 논란은 일단 가라앉게 됐지만 원칙없는 조세정책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기획재정부는 12일 농수산물 의제매입 세액공제한도를 개인사업자에 한해 연매출 4억원 이하인 경우엔 매출액의 50%, 4억원 초과는 매출액의 40%로 매출 규모에 따라 차등 완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같은 내용의 부가가치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 내년 1월1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농수산물 의제매입세액공제란 음식점이 농축수임산물을 매입할 때 구입가격에 부가가치세가 붙어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구입비의 일정액을 부가세에서 공제해주는 제도다. 식당업자들은 그동안 부가가치세 면세물품인 농축수산물 원재료 구입비용이 매출액의 40~50%를 차지한다고 신고해 그만큼 세액공제를 받아왔다. 정부는 그동안 농산물 매입 비중을 부풀리는 사례가 많아 탈세 여지가 크다며 지난 8월 초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면서 매출액의 30%까지만 세금 혜택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30%라는 일괄 공제율이 영세업자에게 과도한 세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정치권과 음식업계의 반발이 거세자 정부는 석달여만에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정부는 관련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했다고 했지만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법인사업자는 당초 정부안대로 공제한도가 매출액의 30%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개인사업자에 대해서만 공제 한도를 높인 것은 긍정적이나 법인의 경우 기존 안을 그대로 유지한 데 대해선 문제가 없는지 검토해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개인사업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법인사업자의 세 부담이 늘 경우 농수축산물을 원재로로 사용하는 식품가공업체들이 가격이 싼 수입 재료를 사용할 여지가 커져 국내 농수축산업계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외식업계가 애초부터 의제매입세액공제 한도 설정 자체에 반대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내년부터 전국 음식점 부가가치 부담이 올해보다 평균 30~40% 늘어날 것으로 보여 수정된 세법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서민증세 논란에 근로자의 세부담 기준을 높이는 등 정부가 여론에 번번히 무릎을 꿇으면서 세제 정책은 일관성을 잃고 세수 결손만 부추긴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당장 이번 농수산물 세액공제 한도 상향조정으로 연간 약 2000억원에 달하는 세수 구멍을 어떻게 메울지도 걱정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정부가 증세 없이 비과세·감면 축소를 통한 세수확보에만 몰입하다 보니 근본적인 처방 없이 시혜적인 조세 정책으로 급한 불만 끄고 있다”며 “아예 의제매입 세액공제를 없애고 농수산물 거래를 과세거래로 전환하는 등 현실에 부합한 원칙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