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이석기 사건의 진보적 교훈

입력 2013-09-0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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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ㆍ전 청와대 정책실장

이들이 우리 사회를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이석기 의원과 그 동료들 말이다. 특정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대통령 선거에 나왔다는 둥 이런저런 막말로 선거제도 자체를 욕보일 때도, 또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뜨릴 때도 그랬다. 그런다고 그들 원하는 대로 세상이 뒤집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내란을 성공시킬 수 있었으리라고 믿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너무 미약하고 유치하다. 전해지는 이야기의 일부는 실소를 자아내게 하기도 한다. 장난감 총을 개조해 어쩌고, 인터넷에서 폭탄 만드는 방법을 배워서 어쩌고 하는 수준이다. 그런 정도에 흔들릴 나라 같았으면 망해도 열 번은 망했겠다. 불만을 가진 세력이 한 둘이 아닐 텐데 이런 정도로 살게 두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위험하다. 논리가 강해서도 아니고 정치적 영향력이 커서도 아니다. 이유는 오히려 역설적이다. 우리 가슴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북한에 대한 두려움을 과도하게 불러내는, 소위 한국판 매카시즘의 배경과 뿌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나와 설치기만 하면 바로 반공주의 보수집단이 결집을 한다. 중요한 의제와 담론 또한 바로 남북대결과 좌우대립의 틀 속에 함몰되거나 사라지고 만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도 그랬다. 이들이 내놓은 대선 후보의 돌출적 언행은 선거를 더욱 좌우 감정 대립으로 흐르게 했다. 최루탄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한·미 FTA에 대한 감정적 대립을 부추긴 것은 물론 사후 준비와 그를 위한 논의의 질을 떨어뜨렸다.

이번의 경우도 그렇다. 안보 문제만 해도 걱정되는 것은 북한만이 아니다. 중국을 보라. 10년 전의 국방예산은 우리 돈으로 30조원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2013년 현재 130조원, 5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당연히 미국과 일본 등은 이를 우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일본도 주변국들과의 영토분쟁을 심화시키는 가운데 군국주의 부활의 움직임이 완연하다. 우리의 광복절이자 일본의 종전기념일인 지난 8월 15일, 아베 수상의 연설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피해국에 대한 사과는 빠지고 전범을 포함한 전몰자들에게는 “여러분의 희생이 있어 오늘의 번영과 평화가 있다”고 했다. 연설을 듣는 이들도 뭔가 결의를 다지는 듯했다. 연 50조원이 넘는 군사비로 국방력도 이미 우리를 앞서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 당연히 같은 민족으로서의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이 중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이석기 의원과 그 동료들의 위험한 언행과 이에 대한 매카시즘적 반응은 우리의 관심과 고민을 화해·협력보다는 대결의 구도로 몰아간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의 비상식적 행동으로 머리 아픈 상황, 이래저래 주변의 복잡한 현실로부터 눈을 돌릴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어디 이뿐이겠나. 진보담론은 그 전체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테면 사회복지 확대와 공교육 강화 등 양극화 완화를 위한 분배구조의 개편이나 현안인 국정원 문제 등 국가권력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개혁 논의 등이다. 보수집단의 목소리가 커지고 진보집단의 목소리는 작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들 의제와 담론이라 하여 그 힘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겠는가. 국정원 문제만 하더라도 이미 그 탄력을 잃어가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 있어 사상과 행동의 다양성은 인정돼야 한다. 그러나 경계해야 한다. 그 다양성이 우리 사회의 안정은 물론 올바른 담론 형성과 의제 설정을 방해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사실 이석기 의원의 존재는 소위 민주세력과 진보진영이 이런 경계를 게을리하는 과정에서 성립됐다. 즉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식의 무분별한 선거연대와 협력이 낳은 결과였다. 지금에 와서야 허겁지겁 애써 이들을 외면하는 민주당과 여타 진보집단의 모습이 안타깝다. 매카시즘이나 그로 인해 이반된 민심과 싸울 의향이 없었다면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 할 연대이고 협력이었다.

어디에서 선을 그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정치로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지금이라도 깊은 반성과 함께 그 선으로서의 철학과 원칙을 분명히 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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