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에 전세대란 공포가 드리운 가운데 ‘전세가율 60% 황금률’ 공식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고 있다. 주택경기 장기 침체와 취득세 감면 연장 보류 등의 영향으로 집을 사려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어 전세대란이 쉽사리 잡히지 않을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20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전세대란이 심각했던 2001년 당시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은 62.2%, 수도권은 60.16%에 달했다. 2001년 한해에만 전세가가 21.8%나 올랐고, 이듬해인 2002년에도 11.9%의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처럼 전세가가 급등한 원인은 주택공급 부족에 있었다. 1998년 IMF 경제위기로 인해 주택 건설이 크게 줄어든 여파가 3년 후 전세대란으로 나타난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전세가율이 오르자 매매 수요가 덩달아 급증했다는 점이다. 전세가가 매매가의 턱밑까지 다가오자 “차라리 집을 사자”는 심리에 불이 붙은 것이다. 또 경제위기를 벗어나고자 정부가 연일 건설·부동산 대책을 발표하고 금리를 낮추는 등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도 매매가 상승을 부추긴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001~2003년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 변동률은 각각 13%, 24.8%, 14.8% 상승해 전세가와의 격차를 벌렸다. 전세가율이 60%를 넘으면 매매 수요가 살아난다는 의미에서 ‘전세가율 60% 황금률’이란 말도 이때 생겨났다.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전세가는 2005년과 2006년 또다시 급등했다. 집값 폭등을 잠재우고자 2003년 전후로 시행된 각종 부동산 규제로 인해 신규주택 공급물량이 줄어들고, 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 인해 이주 수요가 늘어난 데 따른 결과였다. 이때도 전세가 이상으로 매매가가 크게 뛰면서 전세가율이 42%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2006년 이후에는 사뭇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전세가는 꾸준히 오르는 반면 매매가는 하락세를 면치 못했고, 이로 인해 전세가율은 2007년 이후 줄곧 오름세를 기록하고 있다.
8월 현재 아파트 전세가율은 전국 61.01%, 수도권 57.21%로 2001년 이후 12년 만에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지방·광역시의 평균 아파트 전세가 비중은 69.78%로 7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가을 이사철을 맞아 전세가율이 수도권 60%, 지방 70%를 돌파할 것으로 점쳐지지만 과거처럼 매매전환 수요가 살아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주택시장의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낮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말부터 전세가는 뛰고 매매가는 떨어지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2008년 말 이후 지난달까지 전세가는 34.9% 급등했지만 매매가는 6.9% 내렸다.
정부의 헛발 정책도 전세대란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전세대란을 막아보고자 전세자금 지원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전세자금 마련이 급한 서민 지원을 위해 국민주택기금 전세자금대출 규모를 5조7000억원에서 6조8000억원으로 늘리고, ‘목돈 안드는 전세대출’ 상품도 시중은행을 통해 이달 중 출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대책은 전세대란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전세가 상승을 불러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정부의 전세자금 대출 확대 같은 임시방편은 비싼 전세를 소비할 수 있는 유효 수요를 키워 오히려 전세가격을 더 올리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