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환매조건부증권의 구조적 문제- 박해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입력 2013-06-14 11:01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대부분의 금융회사들은 자금을 조달하고 운용하는 과정에서 만기전환을 실행한다. 만기전환이란 단기로 자금을 조달하여 장기로 운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은행이 주택담보대출과 같이 만기가 긴 대출상품을 취급하기 위해 수시입출금이 가능한 요구불예금으로 자금을 모집하면 만기전환에 해당한다. 펀드의 만기에 관계없이 고객이 원하면 언제든지 환매가 가능한 개방형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가 고객의 자금을 장기자산에 투자하여 운용하면 이 역시 만기전환이 된다.

금융회사가 만기전환을 실행하면 대차대조표상에 자산과 부채의 만기 불일치가 발생한다. 금융회사의 만기 불일치 문제는 해당 금융회사의 유동성 위험을 높이고 최악의 경우 채무이행을 불가능하게 하여 해당 금융회사가 파산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금융회사가 연쇄적으로 파산하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이 위협받는 위기상황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다. 만기전환에 따른 금융회사의 개별적 차원의 문제가 자칫 국가적 차원의 시스템적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금융회사가 만기전환을 실행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손쉽게 차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장기금리는 단기금리보다 높다. 이는 불확실한 미래의 금리변동 위험을 보상하기 위한 차원일 수도 있고 현금화가 상대적으로 어려워 장기상품에 유동성 프리미엄이 덧붙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높은 상황에서 만기전환은 금융회사로 하여금 장단기 금리차를 이용한 일종의 차익거래를 가능하게 한다.

금융회사는 주로 만기전환을 위한 자금조달을 단기금융시장에 의존한다. 국내 금융회사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담보제공 없이 차입이 가능한 무담보 콜시장을 통해 단기자금을 조달해왔다. 특히 은행보다 신용도가 낮은 비은행금융회사들은 은행과 같은 수준의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무담보 콜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증가하였다. 이처럼 금융회사의 단기자금 거래가 무담보 콜시장에 집중되다 보니 거래당사자의 신용도에 미치는 자그마한 충격에도 시장이 얼어붙는 자금경색이 쉽게 나타날 수 있게 되었다.

무담보 콜시장 쏠림에 따른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우리나라 금융당국은 무담보 콜거래를 환매조건부증권(RP)거래로 대체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왔다. 증권회사의 콜시장 차입을 자기자본의 25% 이내로 규제하거나 2014년부터 비은행 금융회사의 콜시장 참여를 원칙적으로 제한하려는 조치는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에 따라 일평균 콜거래 규모가 2011년 35조원에서 2012년 29조원으로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에 RP거래 규모는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증가하였다.

자금 차입자가 RP시장에서 자금을 빌리려면 자신이 보유한 증권을 자금 대여자에게 담보로 제공해야 한다. 이는 무담보 콜거래와 달리 자금 차입자의 신용도가 악화되더라도 담보증권의 부실화가 우려되지 않는다면 여전히 자금차입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또한 RP계약 체결과 동시에 담보증권의 소유권이 자금 차입자에서 자금 대여자로 이전되기 때문에 자금 차입자의 채무 불이행이 발생하더라도 자금 대여자는 담보증권 매각을 통해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RP시장은 무담보 콜시장보다 안정적일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RP시장도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금융회사가 RP시장을 이용하여 자금을 조달하려는 궁극적인 이유가 만기전환에 있기 때문에 항상 유동성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RP시장의 자금 대여자가 자금회수를 위해 담보증권을 급매처분(fire sale)하면 담보증권 가격이 폭락하여 자금 대여자에 돈을 맡긴 고객의 대규모 자금인출(run)이 발생할 수 있다. 자금 대여자가 자금 차입자로부터 받은 담보증권을 재담보거래에 이용하면 금융회사간 연계성이 높아져 특정 금융회사의 문제가 다른 금융회사로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RP시장이 발달한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K-코인 신화 위믹스…신화와 허구 기로에 섰다 [위메이드 혁신의 민낯]
  • [르포]유주택자 대출 제한 첫 날, 한산한 창구 "은행별 대책 달라 복잡해"
  • 한국 축구대표팀, 오늘 오후 11시 월드컵 3차예선 오만전…중계 어디서?
  • 연세대 직관 패배…추석 연휴 결방 '최강야구' 강릉고 결과는?
  • 제도 시행 1년 가까워져 오는데…복수의결권 도입 기업 2곳뿐 [복수의결권 300일]
  • 불륜 고백→친권 포기서 작성까지…'이혼 예능' 범람의 진짜 문제 [이슈크래커]
  • 전기차 화재 후…75.6% "전기차 구매 망설여진다" [데이터클립]
  • “고금리 탓에 경기회복 지연”…전방위 압박받는 한은
  • 오늘의 상승종목

  • 09.10 14:56 실시간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77,045,000
    • +3.95%
    • 이더리움
    • 3,177,000
    • +2.48%
    • 비트코인 캐시
    • 435,700
    • +5.39%
    • 리플
    • 727
    • +1.54%
    • 솔라나
    • 181,700
    • +4.97%
    • 에이다
    • 463
    • +0.43%
    • 이오스
    • 666
    • +1.83%
    • 트론
    • 208
    • +0%
    • 스텔라루멘
    • 127
    • +3.25%
    • 비트코인에스브이
    • 62,900
    • +5.45%
    • 체인링크
    • 14,120
    • +0.86%
    • 샌드박스
    • 341
    • +3.02%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