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가 심상치않다. 아베 신조 총리의 취임 이후 주식시장과 기업 실적은 물론 경제 전반에 파란 불이 켜지고 있다.
엔저와 무제한적인 양적완화 도입으로 상징되는 ‘아베노믹스’가 일본 경제를 부활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려 있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감은 아베 총리에 대한 지지율 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이 지난 16일부터 이틀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70%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취임 당시에 비해 18%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아베는 경제를 넘어 집단적 자위권의 명문화를 추진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위상을 재정립하려 하고 있다.
아베의 취임 이후 고위 각료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등 극우적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는 것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아베 정권의 이같은 움직임이 일본의 패권주의를 의미하는 ‘팍스 자포니카(pax japonica)’의 부활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지금까지 아베노믹스는 일단 성공적인 듯 하다. 먼저 ‘잃어버린 10년’의 도화선이 됐던 부동산시장이 회복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베의 취임 이후 주식시장 상승폭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닛케이지수는 이달 들어 1만2000선을 넘어서면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개인투자자를 의미하는 ‘와타나베 부인’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도 일본 경제에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다.
와타나베 부인들의 귀환에 힘입어 도쿄증시의 기업공개(IPO) 규모는 올들어 사상 최대 규모로 커졌다.
일본 경제의 침체에 기인했던 엔캐리 트레이드도 바뀌고 있다.
해외에 투자됐던 자금 중 올 들어 두 달여에 걸쳐 2000억 엔이 넘는 돈이 일본으로 돌아왔다. 이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엔저가 자리하고 있다.
아베의 취임 이후 달러 대비 엔화 가치의 낙폭은 20%에 육박한다.
일본 경제에 대해 낙관론자들은 엔화 약세가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엔캐리 자금의 귀환을 이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다시 주가와 집값을 끌어올리고 소비를 늘리며 지난 20년 동안 일본 경제를 옥죄던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이 아베 정권을 비롯한 일본 경제 낙관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아베노믹스에 대한 신중론도 여전하다. 최근 와타나베 부인들의 해외펀드 수요를 감안할 때 엔캐리 청산이 일시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스터 엔’으로 불리며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아오야마가쿠인대학교 특별초빙교수는 지난 15일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베노믹스는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베의 압박으로 일본은행(BOJ)이 물가 목표치를 2%로 상향했지만 이를 달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의 디플레이션은 상대적으로 값싼 노동력으로 무장한 중국 경제의 영향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로 유동성 공급 등 단순한 대응으로는 풀릴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엔저 역시 일본 경제에 단기적인 호재가 될 수는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힘을 받고 있다.
엔화 약세에 따른 수출경쟁력 강화라는 ‘사탕’보다 수입 물가 급등이라는 ‘부메랑’이 일본 경제를 휩쓸 수 있기 때문이다.
토요타와 닛산 등 일본의 대표 수출업체들이 엔저에 힘입어 실적이 호전되고 있지만 이에 따른 경기회복 효과도 제한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일반적으로 기업 실적 개선이 본격적으로 개인소득 증가와 소비 확대로 연결되기까지는 2~3년 정도가 소요된다. 이 기간 동안 디플레이션 탈출이 본격화하지 않는다면 소비심리는 다시 얼어붙을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