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규의 유쾌통쾌]명품, 그 치명적 유혹

입력 2012-03-1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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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규 경제팀장

서울 유명 특급호텔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하는 A씨는 얼마 전 여성 고객을 위한 호텔 패키지 상품에 고급 명품을 포함시키려다 실패했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최고 명품 회사 담당자에게 몇 번이나 제안해봤지만 단칼에 거절당한 것이다. 타사 제품의 패키지에 자신들의 브랜드를 끼워넣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녀는 본사를 통해 접촉하겠다며 담당자의 연락처나 이메일 주소를 부탁했지만 이마저도 “규정상 안된다”는 대답만 들었다.

명품업계의 높은 콧대는 비단 A씨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유럽과 미국과의 FTA가 발효되며 와인 등 주요 제품 가격이 내려가는 것과 정반대로 에르메스, 샤넬, 프라다 등 유럽 명품 회사들은 자사 제품의 가격을 거꾸로 올려버렸다. 원자재가 폭등이 가격인상의 이유라 했지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가뜩이나 비싼 명품을 올초부터 웃돈을 얹어줘야 했다.

언론들은 앞다퉈 ‘한국소비자는 봉’, ‘FTA 비웃는 명품’등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그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가격인상이 고도의 마케팅 기법이라는 분석도 곁들이며 폭리를 취한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가격 인상 전에 물건을 사겠다며 매장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서며 여론과는 반대로 움직였다.

한국은 이미 소비하는 공간, 소비하는 제품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자본주의 사회로 진화한지 오래다. ‘소비의 사회’를 쓴 보드리야르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명품을 통한 계층 구별짓기가 일상화돼있다. 명품백 하나를 사면 자신은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다는 생각에 은근한 만족감이 든다. 당연히 중산층이 상류층으로 도약하려는 유혹도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빚을 내거나 스폰서를 얻어서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거나 혹은 감추려는 시도는 계속된다. 우리 아이 기죽이기 싫어서, 이번에 부장으로 승진한 우리 남편에게 걸맞는 시계 하나 해주고 싶어서,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한 아내 위로용으로 등등...

현재 한국 사회는 이런 치명적인 유혹 앞에 너무 쉽게 무릎을 꿇었다. 그들의 도도함과 안하무인식의 행보는 우리 소비자들이 만들어줬다는 인식해야 한다. 경고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무조건 명품을 사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기업이 돈을 벌었으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에 대해 견제나 항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국경없는 글로벌 자본이 판치는 마당에 건강한 자본주의를 우리 재벌과 기업에게만 적용시키는 건 형평성에 있어서도 문제가 된다. 명품이니깐 괜찮다는 논리는 억지스럽다.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그동안 사회공헌에는 인색했던 것과 달리 ‘MCM’의 성주기업은 수익의 10%와 김성주 대표의 연봉 20~30%를 성주재단으로 기부했다.

명품의 유혹에 갈대처럼 흔들렸던 기자도 해외출장 때 아내에게 C 브랜드 하나 소장하게 해주려던 마음을 바꿔먹어본다. 아내의 과시욕(?)을 채워주고 그동안 남편들을 힘들게했던 자책감을 털어내기 위해서 한 푼도 내놓지 않는 그들의 뻔뻔함에 쉽사리 수백만원을 보태줄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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