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2일 복지부가 내놓은 약가인하 개편안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포퓰리즘적 정책이라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복지부는 약값의 거품을 걷어내 국민 부담을 덜어주겠다는게 이번 약가인하 조치의 배경이라고 말한다. 또한 복제약들의 가격이 낮아지는 만큼 의사에게 주는 리베이트를 줄여 신약개발에 투자하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이같은 정책은 국내 제약산업 자체의 붕괴를 초래해 결국 소비자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며 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제약협회는 “정부의 강력한 약가 인하 압박은 제약업체의 연구개발(R&D) 활동과 투자의욕을 위축시켜 업계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자초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익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판매관리비를 절반 수준으로 줄여야 하는데, 이 판관비 안에는 R&D 비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연구개발 위축은 애초 정부가 의도한 것과는 상반된 결과이기도 하다. 제약산업을 살리려다 오히려 망치는 ‘자가당착’의 愚(우)를 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최영희 의원이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에 의뢰해 14개 상장 제약회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약가인하가 강행될 경우 내년도 R&D 투자 규모는 8개 기업 1533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대비 73.1%나 감소한 수치다.
최영희 의원은 “R&D투자가 감소하면 이들 기업이 진행 중이던 326개 신약 및 개량신약 개발사업을 절반가량 포기해야 해 중장기적인 투자를 지속하기 어려워진다”며 “최근 우리나라 약제비 증가의 첫 번째 원인이 ‘사용량’이라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고가 있었음에도 정부가 손쉬운 가격정책만 밀어붙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괄약가인하에 대한 보전책으로 정부가 내놓은 지원방안조차 실효성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연구개발 비중이 높거나 글로벌 진출 역량을 갖춘 기업을 '혁신형 제약사'로 선정해 집중지원하겠다고 발표해지만, 업계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조윤정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가혹한 약가인하의 장벽 앞에서 제약업체 본연의 R&D투자마저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 연구개발 중심의 혁신기업 육성자체가 무의미해 질 수도 있다”며 "정부는 제약업체가 정부정책에 대비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중장기적이고 단계적인 약가정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출범한 범부처 신약개발사업단도 업계 경쟁력 강화에 얼마나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업단은 향후 9년간 1조원을 신약개발에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블록버스터급 글로벌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1조원 가까이 들어가는 현실에서(미국 FDA 임상시험 비용 등 포함)는 탁상공론적인 정책일 뿐이란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