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영 전 MBC 사장을 오늘의 ‘엄기영’으로 있게 한 멘트다. 시청자들은 권력의 폐부를 찌르는 이 한마디에 대리만족을 느끼며 우리 언론에 살아 숨쉬는 희망과 비판정신에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이 말은 오늘 부메랑이 되어 엄기영에게로 돌아갔다. 엄 전 사장은 16일 자신이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MBC의 대표적 시사프로그램인 ‘PD수첩’에 대해 “흠결이 많은 프로그램”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PD수첩 보도는 광우병 관련해 여러 문제제기를 했지만 사실과 관련한 오류가 많이 드러나지 않았느냐”고 논거를 댔다. 이에 대해 야권은 일제히 “권력욕에 취해 언론의 독립성과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있다”며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야권 주장을 좇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엄 전 사장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강원도지사 선거 자체를 본질에서 어긋나게 하고 있다. 그가 출마선언문에서 밝힌 것처럼 강원도지사 보선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지역민들의 이해에 충실한 장(長)을 선출하는 축제의 마당이 되어야 한다. 더구나 전(前) 지사의 부재로 치러지는 만큼 도민들의 공허한 심정을 달랠 수 있는 애틋한 리더십이 우선돼야 한다. 그럼에도 엄 전 사장은 자신의 존재가치와 정체성마저 부정하며 선거를 보혁 갈등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그가 MBC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한나라당에선 참여정부 코드인사를 영입했다는 비판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문제는 그의 정체성이 어느 쪽이냐가 아니라 일관성 있는 그의 태도 부재(不在)에서 비롯된다. 양지만을 쫓는 인사가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과거에 대한 논란은 스스로 털어내야 한다. 몸담았던 조직을 부정하기에 앞서 모든 책임을 자신의 과(過)로 돌릴 수 있는 책임감을 보여야 한다. 강원도민에 표를 구하기에 앞서 풀어야 할 스스로의 과제이자 명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