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 칼럼] ‘주 80시간’ 구인, 이 땅서도 통할까

입력 2024-11-1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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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큰정부’ㆍ‘작은정부’ 설전 벌이지만
美 공화ㆍ민주, 돈 풀기는 마찬가지
정색하고 칼 빼든 머스크 주목해야

이렇게 기발해도 되나.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지난주 구인 공고를 냈다. 시쳇말로 신박하다. ‘주 80시간’이란 근무 조건부터 그렇다. 대체 일주일을 공휴일 빼고 어찌 쪼개야 80시간이 나오나. 그는 “정부 혁신에 나설 IQ 높은 혁명가를 모집한다”면서 상위 1% 지원자 이력서만 검토한다고 했다. ‘주 80시간’과 쌍벽을 이루는 것은 ‘무보수’라는 조건이다.

앞서 미국 대선에서 완승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2기의 ‘정부효율부(DOGE)’ 수장에 머스크를 지명했다. 머스크는 하버드대 바이오학과를 수석 졸업한 30대 젊은 기업가 출신 정치인 비벡 라마스와미와 함께 유능한 정부를 만들 책무를 맡는다. 트럼프 표현대로라면 관료주의를 해체하고, 과도한 규제를 철폐하고, 낭비를 줄이고, 연방 기관을 재건할 중책이다. 트럼프는 “미국을 살릴 우리 시대의 맨해튼 프로젝트”라고 했다.

머스크는 “연방기관이 왜 428개나 필요한가, 99개면 충분하다”고 했다. 연방정부 예산에서 2조 달러 이상을 삭감할 수 있다고도 했다. 라마스와미 역시 도덕적 우월성을 방패 삼아 특권과 규제를 양산하는 미국 현실에 치를 떠는 인물이다. 이번 구인 공고를 보니, 적어도 결의는 대단한 것 같다. 물론 결과도 대단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크게 두 시각으로 갈린다. 비판 진영은 정부효율부가 트럼프에 반발하는 딥스테이트(관료집단)를 박살낼 박도가 될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머스크는 반트럼프 세력의 씨를 말리라는 밀명을 받은 셈이다. 반대편엔 긍정적 시각이 존재한다. 정부 혁신과 개조에 대한 갈망이 담긴 관점이다.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깝든 머스크는 일차적으로 큰 정부와 싸워야 한다. 만만치 않은 강적이다.

미 공화당은 작은 정부를, 민주당은 큰 정부를 지향한다는 통념이 있다. 양당은 정부 규모를 놓고 설전을 벌이기 일쑤다. 심지어 1964년 대선에 나선 공화당 후보 배리 골드워터는 ‘어느 보수주의자의 양심’을 통해 소신을 명확히 하기도 했다. “정부를 능률적인 조직으로 만든다거나 정부 효율을 높이는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다. 내가 의도하는 것은 정부 크기를 줄이는 것이다”라고.

그러나 ‘작은 정부’를 실천한 공화당 출신 대통령은 많지 않다. 리처드 닉슨만 봐도 그렇다. 그 역시 균형 재정을 말했지만, 실제로는 큰 정부 작은 정부 가리지 않았다. 재정적 경기 부양책으로 적자를 키웠고, 저리의 정책금융을 제공했고, 가격·임금 인상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반시장적 무리수까지 뒀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은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사회주의적인 대통령”이라고 쏴붙였다.

닉슨에 비하면 로널드 레이건은 작은 정부의 진짜 전도사다. 1981년 1월 대통령 취임식에서 “정부는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정부가 바로 문제다”라고 잘라 말했다. 폴 볼커의 통화 긴축이 불황을 키우고, 정치 입지를 좁힐 것이라고 우려하는 참모들을 달랜 어록 또한 인상적이다. “불황이 지금 오지 않는다면 언제 오겠나. 우리가 당하지 않는다면 누가 당하겠나.”

하지만 레이건조차 빚더미 재앙은 피하지 못했다. 국방비 증액 부담 등이 크게 작용했지만 어쨌거나 백악관 입성 당시 세계 최대 채권국이던 나라가 나중에 보니 최대 채무국이 돼 있었다. 미 경제학자 허버트 스타인은 “어마어마한 재정 적자야말로 레이건 경제 정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평했다. 비수가 따로 없다. 비록 레이건 자신은 “재정 적자를 걱정하지 않는다. 재정 적자가 스스로 돌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자랐다”는 농담으로 넘겼다지만.

과거의 공화당 정부와 달리 트럼프 2기는 명실상부한 작은 정부를 구현할 수 있을까. 머스크가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 성패가 자못 궁금하다. 또 머스크가 비판자들이 의심하듯 반트럼프 세력의 씨를 말릴지도 궁금하다. 그런데, 머스크에게 트럼프 왕국을 꿈꿀 이유가 있을까.

더 궁금한 것도 있다. 머스크의 구인 공고가 대한민국에서도 통할지 여부다. 모르긴 해도 어림도 없지 않나 싶다. 불법 착취, 열정 페이 논란부터 피하기 어렵다. 물론 다른 구인 방식으로도 정부효율화는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작금의 정치·사회 기류를 보면 언감생심이란 생각만 든다. 머스크의 구인 공고를 훑어보다 결국 입술을 깨물게 된다. trala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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