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보조금에도 WTO 제소 우려
RE100 대응 ‘인프라 구축’이 핵심
국민의힘이 반도체 산업에 주 52시간제 예외를 적용(화이트칼라 이그젬션)하고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반도체특별법’(반도체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을 당론으로 발의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난색을 보이면서 통과에 난항이 예상된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12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특별법이) 상임위원회 심사를 거쳐 28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민주당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한다”고 촉구했다. 특별법 소관 상임위인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위원장 이철규)는 다음 주 상임위 전체 회의를 열어 법안을 상정한다는 계획이다. 이철규 위원장 측은 “다음 주 전체 회의를 열기로 잠정 합의했다”고 전했다.
◇‘근로 유연화’에 野 의견 충돌= 다만 야당인 민주당은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는 데에는 동의하면서도 연구·개발(R&D) 종사자에 대해 근로 규제를 완화하는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이른바 ‘근로시간 유연화’에는 이견을 보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1일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집중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한 영역들은 ‘노동시간을 통제하니까 효율성이 떨어진다, 노동자들 자신에게도 불리하다’는 주장도 있다”며 “실제로 그런 면이 있는 것 같다. 만일 그런 부분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 필요한 개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근로 유연화에 대해 검토해볼 수 있다며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기존에 탄력근로제나 특별연장근로 인가제 등 제도가 있다”며 “그것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데, 특별히 반도체 산업이라고 별도로 규정할 필요가 있나 싶다. 다만 한번 검토는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최장 시간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는데, 근로시간을 줄이는 건 세계 추세에 맞지 않다”며 “더구나 자꾸 예외 조항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은 R&D 인력의 주 52시간 예외 조항이 강제가 아닌 임의 규정으로, 당사자(노사) 간 합의하면 별도의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보조금’ 아닌 ‘인프라’ 핵심= 직접 보조금 등 재정 지원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반대한다. 세계무역기구(WTO) 등 글로벌 무역 규범에 위배되는 데다, 오히려 재생에너지 공급을 지원해 반도체 수출을 돕는 게 핵심이라는 입장이다.
진 의장은 “직접 보조금 지원은 WTO 위반으로 제소당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오히려 그것보다 중요한 건 반도체 수출을 위해서라면 인프라를 갖추는 데 정부가 투자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어 “삼성, SK 같은 기업들이 동해안 화력발전소에서 전기를 끌어오려고 하는데, 송전탑 건설이 여의치 않다”며 “탄소를 생산하는 화력발전으로 반도체 생산에 원료를 공급하면, 그 반도체를 해외에 수출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국내 기업들이 RE100(기업 사용전력의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을 압박받는 수출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앞서 김태년 민주당 의원이 6월 대표 발의한 특별법에는 반도체 시설 송전선로 보급로에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설치를 의무화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 의원은 당시 “장차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여야 하고, 기업이 부담을 덜 갖도록 정부나 지자체 지원이 대폭 확충돼 의무화까지 가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이 보조금 지원에 나서면서 글로벌 규범이 퇴색됐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칩스법(CHIPS)과 과학법(Science Act) 등의 근거법을 통해 2022~2026년간 총 500억 달러 규모를 반도체 산업에 쓸 수 있게 명시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의무화와 관련해서도 현시점에서 태양광 설치를 하기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는게 국민의힘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