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개미 김수현 씨는 두 달 전 금리 인하를 노리고 미국 장기채 상장지수펀드(ETF)를 총 5000만 원가량 사들였다. 그러나 김 씨의 수익률은 현재 마이너스(-) 20%대.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미국채 금리가 급등한 탓이다.
김 씨는 “코인 ETF에 투자한 개미(개인투자자)들이 밤마다 종토방에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억씩 번 돈을 인증하고 있다”며 “그 속에서 마이너스 수익을 기록 중이라 박탈감이 심하다”고 했다. 실제 김 씨가 미국 장기채 ETF에 투자한 기간에 ‘그래닛셰어즈 2배 롱 코인베이스 데일리 ETF’(티커명 CONL)에 투자했다면 220%가 넘는 수익을 올렸을 가능성이 크다. 이 ETF는 전날에만 40% 가까이 상승 마감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영향으로 미국 주식과 비트코인 등 자산이 연이어 급등하고 있지만, 미국 장기채 ETF에 투자한 개미들은 급락세를 겪고 있다.
12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서학개미(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는 최근 한 달간 ‘디렉시온 데일리 20년 이상 미국채 3배 ETF’(TMF)를 가장 많이 순매수했다. 순매수액은 1억1492만 달러(약 1611억 원)에 달한다. 이외에도 서학개미는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미국채 ETF’(TLT)를 1977만 달러(약 277억 원)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일학개미(일본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는 일본 증시에서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미국채 엔화 헤지 ETF’(2621)를 가장 많이 순매수했다. 순매수 규모는 4490만 달러(약 630억 원)가량 된다.
국내 시장에서도 미국 장기채 ETF 매수세는 두드러진다. ETF체크에 따르면 같은 기간 개미들은 국내 ETF 중 ‘TIGER 미국30년국채커버드콜액티브(H) ETF’를 5번째(962억 원)로 많이 순매수했다. 이외에도 순매수 7위를 기록한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H) ETF’(722억 원)나, ‘KODEX 미국30년국채타겟커버드콜(합성H) ETF’(366억 원) 등에도 투자에 나섰다.
개미들은 올해 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자, 국내외 상품을 막론하고 미국 장기채 ETF에 투자한 것으로 보인다. 통상 금리가 내려가면 채권 가격이 올라 차익실현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 셈이다.
문제는 트럼프노믹스가 현실화하면서 미국 국채 금리가 상승세라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 재정 적자를 확대할 가능성이 우세한데, 이 과정에서 적자를 메우기 위한 국채 발행은 이어지고 금리는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실제 미국채 10년물은 트럼프의 당선 소식에 6일(현지시각) 4.258%에서 4.479%까지 급등하기도 했다. 현재는 4.3%대로 소폭 하락했지만, 일각에서는 4.5%를 넘어갈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재닛 릴링 올스프링 글로벌 인베스트먼트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지난해 말 최고치인 5%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미국채 금리가 상승하면서 미국 장기채 ETF에 베팅한 개미들의 수익률은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TMF는 6일(현지시각) 하루에만 8% 넘게 급락했다. 현재는 소폭 회복을 했음에도 한 달 사이 6%가량 주가가 빠진 상태다.
TIGER 미국30년국채커버드콜액티브(H) ETF와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H) ETF는 각각 1.71%, 2.88% 하락했다.
다만 국내 증권가에서는 미국 장기채 금리가 추가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우리는 트럼프 2.0으로 연내 미국채 10년이 4% 이하로 내려가는 것은 다소 어렵다고 본다”면서도 “4.5% 이상도 유지 가능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현재를 미국 장기채의 저가 매수 기회로 보고 관련 상품을 내놓는 증권사도 등장하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미국채 10년물과 30년물을 추종하는 상장지수증권(ETN)을 최근 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