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관객 수준 충족 위해 '검증된 영화' 재개봉
"같은 영화라도 OTT와 극장의 영화적 체험 달라"
극장가에 재개봉 열풍이 불고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부터 예술영화에 이르기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한국 상업영화의 질적·양적 축소와 함께 다양한 취향의 관객들을 만족시키려는 극장의 전략이 맞물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2일 영화계에 따르면, 최근 극장가에 재개봉하는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달에만 '괴물', '톰보이', '복수는 나의 것' 등이 다시 개봉에 관객들을 찾았다.
이 밖에도 '노트북', '라라랜드', '문라이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플로리다 프로젝트', '비긴 어게인' 등이 재개봉하면서 관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최근 젊은 관객들이 천편일률적인 한국 상업영화가 아닌 관람 경험이 귀한 독립·예술영화를 찾는 상황과 맥이 닿아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하반기에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베테랑 2'를 제외하면 흥행에 성공한 한국영화가 없다. '대도시의 사랑법', '보통의 가족' 등은 준수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라며 "외국영화 역시 하반기 기대작이었던 '조커 2'가 흥행에 실패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류승룡·진선규 주연의 '아마존 활명수'가 개봉했는데, 원주민을 대상화하는 등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이며 흥행에 실패했다. 손익분기점 250만 규모의 상업영화가 동시대 감수성과 조응하지 못한 것은 제작과 연출, 투자와 배급의 총체적 실패"라고 지적했다.
넷플릭스 등 OTT의 발전으로 가뜩이나 사람들이 극장을 찾지 않는데, 상영 중인 신작이 기대 이하의 작품성을 보이며 관객들의 높아진 수준과 취향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극장들은 과거에 검증된 작품을 재개봉하면서 관객들을 유인하고 있다.
서지명 CGV 팀장은 본지에 "영화 '노트북'은 개봉 20주년을 맞아 지난달 재개봉했다. 재개봉작은 '검증된 새로운 작품'이다. 옛날 영화지만 흥행했거나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을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어 하는 수요가 있다. 그런 영화들 위주로 재개봉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재개봉도 갑자기 할 수는 없다. '노트북'처럼 시기적으로 의미가 있거나 겨울 시즌에 '러브레터'나 '캐롤' 등을 재개봉하는 등 내부적인 관람 데이터를 바탕으로 편성한다"라며 "가령 수능이 다가오니까 10대 혹은 대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옛날 영화를 다시 개봉하는 것도 극장의 전략 중 하나"라고 밝혔다.
실제로 '노트북'은 개봉 4주 차 주말까지 16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재개봉 영화가 10만 명 이상의 관객수를 동원하는 일은 이례적이다.
이지혜 영화평론가는 "같은 영화라도 OTT로 보는 것과 극장에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영화적 체험"이라며 "과거에 놓친 좋은 영화를 작은 화면으로 봤다가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한국영화를 비롯한 외국영화들이 잇따라 흥행에 실패한 탓도 있다"라며 "요즘은 관객들의 취향도 다양해졌다. 신작이라고 무조건 관람하는 게 아니라 과거 개봉작이라도 취향에 맞는 작품을 극장에서 보고 싶어 한다"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