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한은이 던진 대화거리

입력 2024-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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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대화거리에서 정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정치를 잘 모르지만”, “특정 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이란 겸손으로 시작된 대화는 어느새 평론 수준으로 심화된다. 그렇게 한참 정치 상황을 힐난하고 난 후 대화는 한숨을 내쉬거나 허탈한 웃음으로 끝난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멍한듯한 아주 짧은 침묵이다. 열변을 토하고나니 당장 바뀔 것 같지 않은 작금의 상황에 헛헛함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은행이 올해 구조개혁 과제 발표를 마무리 지었다. 3월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을 시작으로 ‘지역경제 성장요인 분석과 거점도시 중심 균형발전(6월)’, ‘우리나라 물가수준의 특징 및 시사점(6월)’,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8월)’, ‘글로벌 공급망으로 본 우리 경제 구조변화와 정책대응(9월)’, ‘리츠를 활용한 주택금융 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11월)’까지 숨 가쁘게 발표했다.

작년 11월에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메가시티’ 논쟁이 불붙었을 때 ‘지역간 인구이동과 지역경제(거점도시)’를 발표했고, 12월에는 초저출산 시대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인구가 4000만 명 이하로 감소할 수 있다는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보고서로 이목을 끌었다.

이창용 한은 총재의 ‘구조개혁 시리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통화정책을 책임지는 중앙은행 수장이 개혁을 거론하는 것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은연중에 묻는 것이다. 몇 번의 질문을 받고 정리한 필자의 견해는 ‘지금은 찬성한다’다.

행정, 입법, 사법의 삼권이 정쟁에 휘말리지 않고 책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평시라면 한은의 구조개혁 보고서는 혹자가 말하는 오지랖, 사족(蛇足)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진흙탕의 혼탁한만 가득하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지성을 모으는 담론은 실종됐다. 그래도 ‘누군가’는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어젠더를 제시해야 한다. 그 누군가가 민간 영역에 있다면 이익집단이란 소속의 테두리에 갇혀 제언의 무게와 진의는 퇴색될 수 있다. 입법부, 행정부가 그 역할을 한다면 마타도어가 난무하는 요새 상황에서 건전한 논의는 기대하기 어렵다. 평시라고 볼 수 없는 2024년 현재, 구조개혁에 대한 메시지의 적절한 무게감과 신뢰를 심어줄 수 있는 ‘누군가의 역할’을 한은이 하고 있는 것이다.

한은이 던진 대화거리가 화두로 떠오를 때면 다양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잇는다. 외국인 돌봄이 논란이었을 때 누군가는 부모님이 요양병원에 계셨을 때를 회상하며 비싼 간병비, 자식으로서 역할 때문에 고민했던 경험을 털어놓는다. 초저출산 보고서가 나왔을 때 누군가는 20년 전 아등바등하며 아이를 키웠던 경험을 얘기하고, 누군가는 지금 맞벌이 부부들의 애환을 말한다. 수십 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제도를 향해 안타까움의 탄식을 내뱉으면서도 “더 바뀌어야 한다”는 말을 곁들인다. 속도는 더딜지라도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나눈 것이다. 허기짐만 가득했던 대화거리 틈바구니에서 생각을 환기시키는 이야기가 오가는 것이다.

한은의 구조개혁 보고서 발간이 주요 책무에서 벗어난 행보인지, 보고서의 내용이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갑론을박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생산적인 대화거리가 없었다면 폄훼와 지적으로만 얼룩진 정쟁 이슈에 생각과 말이 맴돌지 않았을까. 한은이 던진 대화거리, 앞으로 던질 대화거리가 저잣거리에서 맴돌고 또 맴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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