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고령화 시대에 맞는 시설 고민해야”
“학교 주변에 쓰레기가 막 쌓여요. 몇년 째 그냥 저렇게 방치해두니 골치가 너무 아픕니다.”
서울 은평구 은혜초등학교 주변에서 만난 70대 여성은 ”학교 안에 방치된 나무들 때문에 불이라도 나면 산불이 크게 나겠다 싶어서 민원을 얼마나 넣었는지 모른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립초교인 은혜초는 서울의 대표적인 폐교 중 하나다. 1966년 개교한 은혜초는 2018년 학생 수 감소에 따른 운영난을 이유로 급작스럽게 문을 닫았다. 이후 6년이 지난 현재까지 학교 건물 등은 그대로 방치된 상태다.
은혜초 주변은 을씨년스런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학교 주변의 ‘은혜 문구’와 교복 브랜드 상점은 모두 셔터를 내린 상태였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탓에 학교 주변엔 수풀이 우거지고 쓰러진 나뭇가지 등도 널부러져 있었다.
전국적으로 폐교가 늘어나고 있지만 문을 닫은 후 오랜 기간 방치되는 학교도 덩달아 늘고 있다. 은혜초와 같은 사립학교는 상황이 복잡하지만 공립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폐교 부근은 지역 슬럼화 가능성을 높이는 만큼 미활용 폐교 부지에 대한 적극적인 활용 방안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교육부의 시·도교육청 폐교재산현황에 따르면 전체 폐교(3955곳) 중 매각 절차가 이뤄진 곳은 2609곳이다. 하지만 보유 폐교(1346곳) 중 교육·복지시설로 임대하거나 교육청 자체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미활용 폐교는 367곳에 달한다.
미활용 폐교는 △전남 75곳 △경남 72곳 △경북 57곳 △강원 56곳 △충북 29곳 △충남 20곳 △경기 19곳 △제주 12곳 △인천 8곳 △전북 7곳 △서울 6곳 △부산·대전·울산 2곳이다. 전국 미활용 폐교 부지의 전체 대지 면적은 약 410만㎡에 달하며, 건물과 대지의 대장가격은 5조1230억 원 규모다.
전국 폐교들의 미활용 사유도 다양하다. 1999년 폐교된 경남 합천 지역의 봉산초등학교 옥계분교장의 경우 외진 곳에 학교가 위치해 전기와 수도 등 기반시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여지껏 미활용되고 있다. 2009년 문을 닫은 경기 여주의 점동초 안평분교장은 도시 외곽에 위치해있고 학교 진입로가 사유지라 맹지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미활용 상태다. 2014년 폐교한 경북 경주의 강동초 단구분교장의 경우 폐교 인근에 위치한 돈사로 인한 냄새 때문에 활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서울에서도 미활용 폐교가 6곳에 달한다. 각각의 폐교는 ‘유아교육진흥원’, ‘에코스쿨’, ‘서울 통합온라인학교’(가칭) 등으로 조성될 전망이지만 진행은 더디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6개 폐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기본 계획은 다 세워둔 상태”라면서 “앞으로도 학교 통폐합 등으로 인한 부지가 많이 나올 가능성이 큰데, 그럴 경우 서울시와 협업해 실버타운 등 다양한 사업에 대한 협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9월 26일 서울시교육청은 ‘폐교재산 관리 및 활용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 조례’를 공포, 폐교 재산을 노인복지주택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텄다. 이로써 서울 폐교를 활용한 실버타운 등을 조성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폐교를 활용할 수 있는 여러 아이디어가 있는데 현재 초고령 사회가 되고 있기 때문에 고령자들의 평생교육을 위한 다양한 직업 훈련 등이 이뤄질 수 있는 교육시설 조성이 되면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면서 “폐교가 발생하는 지역은 고령 인구 밀도가 높을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폐교를 당장 어떻게 해야 한다’는 조급증을 버리는 것”이라면서 “단편적으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국 각 지역별로 폐교가 생기는 원인이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각 지역별로 맞춤형 대책을 고민해봐야 한다”면서 “각 교육청이 지자체와 함께 폐교 활용 방안에 대해 협업하면서 노인복지주택을 넘어서 보다 적극적인 고령화 대응을 위한 시설을 마련하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