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워크도 아닌데…MZ세대 홀린 걷기 게임, '피크민'의 정체 [이슈크래커]

입력 2024-10-29 17:05 수정 2024-10-2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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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피크민 블룸' 캡처)
▲(출처='피크민 블룸' 캡처)

빨간색 몸에 커다란 눈, 뾰족한 코, 머리 위로 솟은 꽃 한 송이…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모바일 게임 '피크민 블룸' 속 캐릭터 모습입니다.

'피크민 블룸'은 닌텐도의 인기 지식재산권(IP) '피크민'을 활용한 증강현실(AR) 게임인데요. 피크민이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을 제외한 전반적인 게임 방식과 요소, 그리고 서사는 딴판입니다.

'피크민' 시리즈 중 가장 최신작인 '피크민4'(2023)는 미지의 행성으로 추락한 '캡틴 올리마'와 그의 조난 신호를 받고 구조에선 나선 구조대마저 조난을 당한 상황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게임 유저는 본부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입 구조대원이 되고, 다양한 생명이 살아가고 있는 미지의 행성에서 신비한 생물 '피크민'과 함께 행성을 탐색해 나가야 하죠. 탐험, 퍼즐 해결 등을 통해 게임을 진행하고 피크민을 활용해 다양한 장애물과 적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피크민4'가 전략 어드벤처 게임이라면, '피크민 블룸'은 '힐링 게임'입니다. '피크민 블룸' 속 피크민들은 그저 유유자적 돌아다니다가 정수를 먹고 머리 위 꽃을 피우는 게 일과입니다. 산책하는 유저를 따라 함께 걷고, 산책 중 아이템을 주워오기도 하지만, 적과 맞붙는 등 과격한 액티비티(?)엔 나서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이 단순한 산책 게임인 '피크민 블룸'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출시한 지 무려 3년이 지난 지금에서 말인데요. 출시 당시에는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게임이 새롭게 주목받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봤습니다.

▲(출처='피크민 블룸' 캡처)
▲(출처='피크민 블룸' 캡처)

"'피크민 블룸' 인기라고? 너 누군데?"…'포켓몬 고'와 또 다른 매력

닌텐도의 '피크민' 시리즈는 국내에 덜 알려졌을 뿐, 2001년 출시된 닌텐도의 유서 깊은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젤다의 전설', '동키콩', '슈퍼 마리오' 등 유수 명작 게임을 만들어낸 전설적인 인물 미야모토 시게루 닌텐도 전무이사가 만든 캐릭터이자 게임인데요. 1편과 2편이 게임큐브, 3편이 위유로 각각 선보여진 바 있습니다. 그러나 게임큐브, 위유는 특별히 인기를 끌지 못하면서 빠르게 단종된 게임기인 데다가 특히 위유는 한국에 출시되지도 않았죠. 피크민 시리즈는 닌텐도 위용 게임으로 2011년에야 국내에 처음 정식 발매됐습니다. 국내 유저들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던 이유죠.

이후 피크민 시리즈의 20주년을 맞아 등장한 게 모바일 게임 '피크민 블룸'입니다. 2021년 11월 출시된 이 게임은 "'포켓몬 고'를 연상케 한다"는 반응도 자아냈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피크민 블룸'은 '포켓몬 고'에 이어 나이언틱과 닌텐도가 손잡고 출시한 두 번째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2017년 1월 국내 출시된 '포켓몬 고'는 포켓몬 IP를 소유한 포켓몬 컴퍼니, 닌텐도, 그리고 나이언틱이 협업해 만든 모바일 AR 게임입니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비추는 실제 세계에 포켓몬 캐릭터를 합성해 띄워주고, 유저는 스마트폰 화면에 나타난 포켓몬을 몬스터볼을 이용해 잡을 수 있는데요. 출시와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포켓몬을 잡겠다며 수많은 유저들이 도심 곳곳을 누볐죠. 위치 정보 시스템(GPS)을 기반으로 지역에 따라 수집할 수 있는 포켓몬이 달라지면서 높은 현실감을 제공한 게 인기 요인이 됐습니다. 물 속성 포켓몬은 강, 호수, 바다 등 물가에서만 잡을 수 있고, 전기 포켓몬은 발전소나 공장 주변에서 나오는 식으로요.

게임의 가장 큰 장애물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었습니다. 외부 활동이 필수적인 게임인데 외부 활동에 제약이 생기니 유저들의 관심도 식었고, 여기에 느린 업데이트 속도는 불평을 자아냈죠.

그러나 2022년 2월 SPC삼립이 '포켓몬 빵'으로 대박을 터뜨리면서 포켓몬 IP에 대한 관심도 폭증했습니다. 이 관심은 '포켓몬 고'로도 이어졌는데요.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91만 명에 그쳤던 2022년 2월 포켓몬고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3월 110만 명, 4월 126만 명, 5월 149만 명, 6월 187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2022년 7월에는 200만 명을 돌파하며 국내 이용자 수 1위 게임으로 자리매김, 지금까지 인기를 유지하면서 '장수 게임'으로 거듭났죠.

'포켓몬 고'가 일종의 수집형 역할 수행 게임(RPG)이라면, '피크민 블룸'은 방치형 게임에 가깝습니다. '포켓몬 고'처럼 게임의 주요 기반은 '걷기'인데요. 앱에 직접 접속하지 않아도 걸음 수가 측정되기 때문에 특별한 노력 없이도 게임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유저가 실제로 걸을 때마다 피크민이 태어나는 모종을 발견할 수 있고, 이를 슬롯에 심고 걸어 다니면 새로운 피크민이 태어납니다. 모종은 빨간색, 노란색, 보라색, 흰색, 회색 등이 있는데 모종마다 피크민을 피우기 위한 걸음 수는 다릅니다. 각양각색의 피크민을 얻고 싶다면 일상생활에서 열심히 걸어 다니면 된다는 겁니다.

며칠만 플레이해도 피크민은 수십 마리로 불어납니다. 이 피크민들은 '탐험'을 보내서 모종, 과일을 채집해 올 수 있습니다. 과일은 정수를 얻을 수 있는 재료이며, 과일을 통해 얻은 정수를 자신이 보유한 피크민에게 먹여 꽃을 피우게 해 꽃잎을 획득할 수 있죠.

탐험은 유저가 실제로 방문했던 곳에서 사진을 기록해야만 보낼 수 있는데요. 더욱 많은 모종과 과일을 얻기 위해서는 유저가 많은 장소를 다녀와야 합니다. 게임 내에서 유저가 방문했던 장소는 초록색으로 지도에 표시되는데, 유저가 꽃을 심으면서 걸어 다녔을 땐 이동 동선에 따라 꽃길이 나타납니다. 실제 지도와 연동된 게임 속 지도에서는 다른 유저가 심어놓은 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 근처, 도심 거리 등에는 꽃이 빼곡하게 심겨 있는데요. 이를 통해서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함께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유대감도 형성하게 됩니다.

밤 9시에는 유저가 하루 동안 걸었던 걸음 수와 길 등을 정리해서 보여주는데, 사진이나 글을 첨부해 하루를 정리하고 기록할 수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친구와 함께 목표 걸음 수를 채우는 챌린지에도 도전할 수 있고, 모르는 유저들과 함께 버섯을 파괴하는 미션에도 나설 수 있습니다.

또 맵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빅플라워를 발견할 수 있는데, 빅플라워 주변에 꽃을 심으면 거대 과일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빅플라워는 마치 '포켓몬 고'에 등장하는 '체육관'과 유사하게 그 지역의 랜드마크, 혹은 조형물 등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다만 배틀 플레이 위주의 게임은 아닌, 육성 혹은 꾸미기 게임과 비슷하죠. '다마고찌', '동물의 숲'과 비슷하달까요. 도파민에 절어 있는(?) 사회 속 작은 안식처가 되어준다는 평도 적지 않습니다.

▲X에서 인기를 끈 '피크민' 관련 밈. (출처=X 캡처)
▲X에서 인기를 끈 '피크민' 관련 밈. (출처=X 캡처)

입소문 나더니 '역주행'까지…'헬시 플레저' 훈풍 타고 훨훨

'피크민 블룸'은 지난여름까지만 해도 특별한 언급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구글플레이, 앱 스토어 등 앱 다운로드 순위 차트에서도 '피크민 블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는데요. 최근 산책하기 딱 좋은 계절 가을을 맞이한 데다가 대형 업데이트가 맞물리면서 다운로드 수치가 급격하게 상승했죠.

X(옛 트위터)에서는 유저들이 재생산한 각종 밈으로 관심이 치솟았습니다.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역주행'까지 성공했는데요. 구글 플레이 기준 다운로드 100위권 안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하던 게임이 지난주엔 다운로드 순위 1위를 차지했습니다. 29일 오전 기준 구글 플레이 게임 순위 7위를 차지하는 등 여전히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데요.

게임의 핵심이 '걷기'인 만큼, 게임을 위해 일부러 외출해 산책하고 있다는 유저들의 후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는 젊은 층 사이 유행하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와도 궤를 같이하죠.

헬시 플레저란 건강을 추구하는 동시에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문화입니다. 당이나 탄수화물, 카페인 등을 줄인 식음료 상품에 대한 관심이 계속해서 높아지는 것도 이 맥락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운동 중에서는 최근 열풍이 정점을 찍은 '러닝'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시간·비용 부담이 적어 생활 스포츠 중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인 데다가 신체적 건강, 정신적 만족감을 동시에 잡을 수 있죠.

'어다행다'(어차피 다이어트를 할 거면 행복하게 한다)는 신조어도 익숙해진 요즘입니다. 다이어터들은 닭가슴살, 계란만 고통스럽게 고집하는 게 아니라 초콜릿 맛 단백질 파우더, 다양한 토핑과 함께 즐기는 무당 그릭 요거트, 곤약 떡볶이, 제로 아이스크림 등 칼로리가 낮거나 설탕이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즐기곤 하죠.

건강 관리를 게임처럼, 또 게임을 건강 관리와 함께 즐기는 문화에 푹 빠져 있는 젊은 세대인데요. 이들에게 '피크민 블룸'은 귀여우면서도 소소한 재미를 주고, 친구들과 간편하게 교류할 수 있는 데다가 하루를 건강 관리와 함께 기록하면서 다양한 만족감을 선사합니다.

(출처=캐시워크)
(출처=캐시워크)

만보기 속속 적용하는 앱들…충성 고객 확보까지

이 같은 흐름을 타고 지자체, 금융사 등도 앞다퉈 비슷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습니다. 기존 앱에 '만보기' 기능을 추가하는 건데요.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로 사용자 걸음 수를 재고, 목표 걸음 수를 달성하면 포인트 등으로 보상을 지급하죠.

대표주자 격으로 항상 언급되는 앱이 '캐시워크'입니다. 캐시워크는 2017년 출시돼 구글 플레이 다운로드 수만 2000만 회를 훌쩍 넘겼는데요. 앱에선 오늘 걸은 거리와 시간, 소비한 칼로리를 확인하는 건 물론 걸음 수에 따라 캐시를 적립할 수 있습니다. 걷기로는 하루 최대 1만 걸음까지 측정해 100캐시까지 지급하는데, 이 포인트로 다양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퀴즈 정답을 맞히거나 이벤트 참여 등 다른 방법으로도 포인트를 모을 수 있어 이른바 '짠테크'에도 유리합니다.

서울시가 내놓은 '손목닥터9988'은 매일 접속하면 10원을 주고, 하루에 8000보 넘게 걸으면 지역 화폐 200원을 적립해 줍니다. 1년에 최대 10만 원까지 적립할 수 있는데, 한 주에 목표 달성을 세 차례 이상 하면 500원을 매주 얹어주는 등 추가 포인트도 쏠쏠하다는 평가가 나오죠.

보험사인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이 운영하는 '365플래닛'은 8000걸음 이상 걸으면 100원을 줍니다. 월 단위로 걸음 수를 집계하고 특정 걸음 수에 도달하는 날엔 최대 1000원을 지급해, 한 달에 20만 보를 걸으면 최대 4000원을 벌 수 있죠. 포인트는 교보문고 포인트나 커피 기프티콘 등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은행 앱들에도 만보기 기능이 도입돼 있어, 각기 기준을 채우면 포인트를 지급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들 앱은 만보기 기능과 보상을 결합해 이용자의 지속적인 앱 접속을 유도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다양한 광고 상품이나 관련 콘텐츠에 이용자를 노출시킬 수 있습니다. 고물가 시대, 짠테크가 다수의 일상이 되고 헬시 플레저 트렌드까지 이어지면서 MAU까지 증가, 충성 고객까지 확보하는 등 변화도 체감되죠.

'피크민 블룸'은 포인트를 적립해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앱 내 결제 서비스(?)가 있는데요. 귀여운 피크민들을 더 많이 데리고 다니기 위해 게임 속 아이템을 현금으로 구매하는 '현질' 충동을 느낀다는 이용자도 적지 않죠.

그런데도 '피크민 블룸'은 걷기에 대한 즐거움, 캐릭터들과 꽃길을 걷는 듯한 힐링, 유저들의 적극적인 밈 생산 등으로 재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나서야 하는 등굣길, 혹은 출근길을 피크민과 함께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큰 재미를 못 느끼더라도 적어도 걸음 수를 측정하는 만보기로는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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