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의협) 산하기구가 발행하는 학술지에서 의사 집단행동은 환자 생명권을 침해하지 않으며, 침해할 의도가 있었더라도 그 결과에 큰 책임이 있지 않다는 주장이 나왔다.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원은 최근 발행한 계간지 의료정책포럼 제22권 2호에서 ‘의사 단체행동 윤리적 고찰’을 특집으로 다뤘다. 의료정책포럼은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미등재 학술지로, 게재되는 글들은 일반적인 학술지 논문과 다르다. 참고문헌, 연구방법론 등 이론적 근거가 생략된 칼럼 내지는 에세이 형식의 글이 많고, 대체로 의협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정유석 단국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2024년 의사 파업의 윤리, 비판과 성찰’이란 제목의 글에서 전공의, 의과대학생들이 주축이 된 이번 집단행동을 ‘파업 실패’로 규정했다. 그는 “개원가는 방관했고, 의협은 변죽만 울렸고, 교수들은 힘겹게 버티다 남 좋은 일만 해 주었다”며 “파업은 상대를 최대한 불편하게 만들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최후의 보루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인데, 관망하다 타이밍을 놓쳤다”고 주장했다.
또 “흔히 부모·자식 간 관계에 비유되는 ‘사제 윤리적’ 관점에서도 교수들은 행동했어야 했다”며 집단행동 자체보다는 ‘임팩트 없는 투쟁’을 문제로 지적했다.
장동익 공주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환자의 생명, 의사의 집단행동, 그리고 의사의 윤리’란 글에서 의사 집단행동에 대한 비판이 부당하다고 항변했다. 그는 “2500년 전 의사의 활동을 규제하던 이념은 오늘날 의사의 활동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주장을 늘어놓는다”며 “그런데도 현재의 대한민국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망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사들이 낡은 이념에 얽매어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고, 윤리적 비난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또 “의사에게 요구되는 윤리성의 정도는 의사에게 부여된 특권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면 당연히 특권이 많거나 줄어드는 정도에 상응해 윤리에 대한 요구도 늘거나 줄어들어야 한다”며 “우리 사회가 의사에게 특권은 줄이고 높은 수준의 윤리 의식만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관적이지 않으며, 정의롭지도 못하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환자 생명권이 의사의 권리보다 반드시 우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생명권의 침해 불가능성은 생명을 직접 죽이는 것만을 금지한다. 그러나 의사의 집단행위는 환자의 생명을 직접 죽이는 것도, 죽이려는 의도를 가진 것도 아니다”라며 “설령 죽이려는 의도나 미필적 고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집단행위의 결과에 큰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도 ‘의사 집단행동과 국가’란 제목의 글에서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저항하는 것은 비단 의사뿐 아닌 모든 시민의 권리이며 민주주의 국가라면 이를 보장해야 할 것”이라며 의사 집단행동의 정당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