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면 온도 올라 해양생태계 타격
점증하는 재앙에 위기 의식 가져야
기름 냄새를 맡으며 부치는 전, 길고 긴 귀성길과 귀경길. 이런 것 말고도 이번 추석에 많은 이들을 고통 속에 빠트린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늦더위다. 이번 추석 연휴 동안 한낮 기온은 34도에 육박하는 등 한여름 기온을 웃도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전례 없는 더위에 대해 뉴스에서는 거시적인 설명보다는 기상학적인 분석에 초점을 맞추는 듯하다. 이른바 열돔(heat dome)현상 때문으로 풀이한다.
올해와 같은 경우, 상공 12km의 티베트 고기압과 상공 5km의 북태평양 고기압이 이중으로 만나게 되면서,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한 채 장기간 정체되는 양상이 펼쳐졌다고 케이웨더는 설명한다. 이번 열돔 현상이 오죽 심했으면 9월 초면 한두 차례 지나갔어야 할 태풍조차 밀어냈다.
그렇다면, 비단 올해만 이런 현상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다. 2017년 이후부터 꾸준히 한반도에 열돔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근본적 원인은 무엇보다 해수면 온도 상승에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서해의 온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서쪽에 구름이 많이 형성되어, 이로 인해 열대성 고기압의 열기가 빠져나가기 어려운 대기 상태가 되었다.
다행히도 많은 이들이 올해 유별났던 더위로 인해 폭염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된 듯하다. 심한 더위는 단순히 우리에게 괴로움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로 ‘재해’이다. 우선 당장 사람들에게 온열 질환을 야기한다. 온열 질환이 직접적인 사망 원인으로 잘 집계되지 않기 때문에,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더위는 단순히 탈수만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 심근경색, 심장마비, 호흡 곤란 등을 야기할 수 있으며 특히 노약자와 어린이들에게 치명적이다.
2010년부터 다년간 이루어진 미국 공중보건연구소(Public Health Institute)의 연구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에서 폭염이 발생한 날, 그렇지 않은 날보다 평균적으로 사망률이 6배나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명한 의학 저널인 랜싯(Lancet)에서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일사병 등 더위가 직접적인 사인으로 집계된 사망 건수만 전 세계적으로 매해 49만 건에 이른다고 한다.
더위는 비단 인간에게만 재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심한 더위는 지구의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전 세계적으로 폭염과 더불어 폭우와 태풍이 여느 때보다 많이 강타했지만 전체적인 강수량은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한다. 강수량이 줄어들면 식물의 섭생에도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를 먹이로 하는 동물들의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해양 생태계이다. 해양의 온도가 올라가면 아이러니컬하게도 해양 숲의 사막화가 진행된다. 매년 50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분해해주는 지구의 산소 저장고, 다시마 숲의 면적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산호 또한 해양 온도 상승으로 인해 백화가 진행되고 있다. 다시마와 산호 모두 해양 동물들의 먹이이자 터전이다. 이들이 소멸해 가면 지구 생태계의 94%를 차지하고 있는 해양 생태계에도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더 두려운 것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앞으로 이런 폭염이 더욱 악화될 거란 사실이다. 1979년부터 이루어진 조사에 따르면 폭염을 일으키는 열파(heat wave)가 점점 더 느리게 이동하고, 더 강한 열기를 내뿜고 있다고 한다. 지구 표면과 해양 표면 온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서, 열기의 복사냉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정말 재앙이 아닐 수 없다. 단순히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고 여기며 더위를 견딜 게 아니라, 그 이면의 무시무시한 위기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때이다. 청량한 공기와 색색의 낙엽이 아름다운 가을을 잃어버리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