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올림픽'이 12일(이하 한국시간) 대장정을 마쳤습니다.
볼거리도, 논란도(?) 풍성한 전 세계 축제의 장이었는데요. 한국은 태극전사들의 맹활약에 힘입어 금메달 13개, 은메달 9개, 동메달 10개를 목에 걸었습니다. 종합 순위 8위의 호성적으로 대회를 마쳤는데요. 큰 기대가 없었던 종목에서도 깜짝 메달이 터져 나오면서 국민의 함성을 키웠죠.
이 열기의 바통을 넘겨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곳도 있습니다. 바로 방송가인데요. 감동적인 서사로 국민을 울리고 뛰어난 경기력으로 웃게 한 '선수들 모시기'에 한창입니다. 기대 이상의 금빛 향연이 펼쳐진 만큼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올림픽 특수'를 이어간다는 계획이죠.
이번 올림픽의 시작은 다소 초라했습니다. 화려한 막을 여는 개막식 시청률이 그야말로 바닥을 친 건데요.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새벽 2시에 방송된 '2024 파리올림픽' 개막식 시청률은 KBS 1.4%, MBC 1.0%, SBS 0.6%를 기록했습니다. 도합 3.0%였죠.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 중계는 지상파 3사 합계 17.2%를 기록했는데요. 당시 시청률은 KBS1 8.4%, SBS 4.8%, MBC 4% 순이었습니다.
물론 시청률을 단순히 도쿄 대회와 비교할 순 없는데요. 프랑스와 한국의 시차는 7시간입니다. 현지에서 오후 7시 30분 개막식이 시작한 만큼, 한국 시간으론 새벽 2시 30분에 중계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한창 단잠을 자고 있을 시간이죠.
그러나 지난 올림픽 대회의 개막식 TV 시청률 합계를 살펴보면 '2012 런던올림픽' 당시 14%,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는 20%였습니다. 각각 8시간, 12시간의 시차가 나는 터라 시차만으론 저조한 시청률을 설명할 순 없죠. 시차를 감안하더라도 이번 대회 개막식이 한국 시간으로 토요일 새벽에 열렸다는 점에서 기대에 다소 못 미치는 수치라는 평가가 우세했습니다.
여기에 현지 장내 아나운서가 한국을 북한으로 소개하는가 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화 '최후의 만찬' 속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연상시키는 듯한 무대에 공연자로 여장 남성 모델(드래그퀸)들이 등장한 것을 보고 종교계에서 "신성 모독" 등 거센 비판이 나오는 등 여러모로 시끌벅적한 개막식이었습니다.
낮아도 너무 낮은 시청률로 포문을 열다 보니, 방송가에서도 올림픽 특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는데요. 흐름을 바꾼 건 태극전사들이었습니다. 선수들이 맹활약하면서 메달을 휩쓸자 지상파 3사의 시청률도 일제히 상승한 겁니다.
종목별로는 전 종목 금메달을 싹쓸이한 양궁이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김우진이 금메달을 딴 남자 양궁 개인전 결승 지상파 3사 순수 경기 시청률은 합계 42.2%(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가구 기준)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MBC가 함박웃음을 지었죠. MBC에서만 18.3%가 나왔는데요. 수도권에선 20.2%까지 치솟으며 파리 올림픽 기간 모든 방송사 중계를 통틀어 유일하게 평균 20%대 시청률을 달성했습니다.
방송사별로 특색을 내세운 해설진 조합도 시청률 상승세를 이끌었습니다. 양궁에선 MBC 김성주·장혜진, 펜싱에선 KBS 김정환·김준호, 사격에선 KBS 김민경, 배드민턴과 탁구에선 SBS 이용대·현정화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았는데요. 국가대표 출신 해설위원부터 오디션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온 방송인들이 나서면서 쉽고 재밌게, 또 긴박감 넘치게 경기를 이해하도록 도왔다는 호평이 나옵니다.
아쉬운 점은 이번 올림픽에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단체 구기 종목이 빠졌다는 겁니다. 한국은 여자 핸드볼을 제외하곤 축구, 농구, 배구 등 단체 구기 종목에서 대거 탈락하면서 본선에 오르지 못했는데요. 특히 축구는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여럿 포함돼 있고 고정 팬층까지 두터워 30%대의 시청률까지 기대해볼 법했습니다. 지난 도쿄 대회에서도 한국 대표팀이 루마니아를 4-0으로 꺾었던 조별리그 B조 2차전 지상파 3사의 누적 시청률은 33%로 집계된 바 있죠.
방송사들은 이제 올림픽 열기를 잇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대회에서 맹활약하며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선수들을 섭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건데요. 특히 명장면을 연출한 메달리스트 섭외에 열을 올렸다는 후문입니다.
가장 먼저 출발선을 끊은 이들은 '뉴 어펜져스'(어벤져스+펜싱)로 불리는 펜싱 선수들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을 거머쥔 오상욱, 구본길, 박상원, 도경동은 12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 얼굴을 비쳤습니다. 이들은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금의환향해 눈길을 끌었죠.
오상욱, 도경동, 박상원은 간신히 공항을 빠져나온 후 주장인 구본길에게 꽃다발과 깜짝 선물을 건넸습니다. 앞서 구본길은 '동상이몽2' 출연 당시 둘째 아들인 모찌(태명)의 출산을 앞두고 있었지만, 출산 예정일과 올림픽 일정이 겹쳐 아내 곁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아쉬워한 바 있죠. 그는 후배들의 깜짝 축하 선물에 감동하며 고마움을 전한 뒤 곧바로 아내 박은주 씨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감격의 인사를 나눈 구본길은 아내에게 금메달을 걸어준 뒤, 처음으로 함께 둘째 아들 모찌를 만나며 뭉클한 감동을 자아냈죠. 이날 방송은 분당 최고 시청률 6.1%(수도권 기준), 평균 시청률 4.5%를 기록, 동시간대 지상파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를 차지했습니다.
뉴 어펜져스는 22일 방송되는 ENA '현무카세', 다음 달 1일 방송되는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에 잇달아 출연하며 예능 나들이를 이어갑니다. '미남 검객'으로 해외 시청자까지 홀린 오상욱은 14일 방송되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에도 출연하죠.
'유퀴즈'는 발 빠르게 올림픽 스타들 섭외에 성공했습니다. 독립투사 후손으로 일본 국적을 포기한 후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허미미, 체급 차이를 넘어선 상대와 맞서 극적 승리를 쟁취한 안바울, 무제한급 사상 최고 성적인 은메달을 획득한 김민종 등 유도 국가대표들도 '유퀴즈'에서 유도와 인생 이야기를 털어놓을 예정입니다.
여기에 해외 팬까지 쓸어 담은 사격 국가대표들도 나서는데요.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메달을 거머쥔 오예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감탄한 카리스마의 김예지, 한국 역대 하계올림픽 100번째 금메달을 쟁취하며 한국 역사상 최연소 금메달리스트로 기록된 반효진까지, 큰 자기 유재석과 아기 자기 조세호를 만납니다.
올림픽 사상 최초로 양궁 5개 전 종목을 석권한 양궁 대표팀은 MBC '놀면 뭐하니?'에 출격합니다. 새로운 역사를 쓴 김우진, 김제덕, 이우석, 남수현, 임시현, 전훈영이 출연해 눈길을 사로잡을 예정이죠.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도 미소 짓고 있습니다. 올림픽에서 활약한 선수들의 과거 출연분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기 때문인데요. '삐약이' 신유빈의 '갓기'(신(God)+아기)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는 SBS '스타킹', MBC '무한도전'이 대표적입니다.
2009년 신유빈은 '스타킹'에 '5세 탁구 신동'으로 출연한 바 있습니다. 현정화 해설위원과 팽팽한 탁구 대결을 펼쳐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죠. 2014년에는 '무한도전' 멤버들과의 탁구 대결에서 여유롭게 승리하며 웃음을 안겼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신유빈을 향한 '무한도전' 멤버들의 날 선 견제(?), 기상천외한 외계인 분장, 혼을 쏙 빼놓는 입담이 재조명되면서 시청자들은 "다시 봐도 애를 상대로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비열하다", "신유빈 때문에 몇 년 만에 보러왔다. 여전히 웃기다", "지구를 걸고 외계인들과 대결했는데 올림픽이 떨렸겠나. 혹독한 멘탈 트레이닝을 한 것" 등 웃음 가득한 반응을 내놓고 있습니다.
국내 OTT 중 단독으로 '2024 파리올림픽'을 중계한 웨이브에 따르면, 신유빈이 혼성 복식 파이널에서 동메달을 거머쥔 지난달 30일에는 그가 출연했던 '무한도전' 372회(2014년 3월 15일)와 '놀면 뭐하니?' 102회(2021년 8월 21일) 모두 시청자 수가 1.5배 이상 올랐습니다.
오상욱은 '2020 도쿄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바 있는데요.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또다시 금메달 획득에 성공하자 해당 회차의 시청자 수와 시청 시간이 모두 8배 상승했습니다. 남자 양궁의 김우진·김제덕이 나왔던 SBS '집사부일체' 시청 지표도 2배 이상 뛰었죠.
방송에서 수차례 예능감을 뽐낸 선수부터 이번 올림픽을 통해 혜성처럼 등장한 선수까지, 많은 이들이 방송가를 연달아 찾을 예정인데요. 올림픽 비하인드와 함께 이들이 들려줄 속 깊은 이야기에도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