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전국 곳곳에 거세고 강한 비가 내리면서 피해가 속출했습니다.
이날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는 시간당 70㎜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호우 특보가 발효됐습니다. 서울 동작구, 구로구에는 1시간 동안 각각 73.5㎜, 72.5㎜의 거센 비가 쏟아졌죠. 기상청은 극한호우를 알리는 긴급재난문자를 서울 일부 지역에 발송했습니다. 지난달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이 실시된 이후 첫 실제 상황에서 문자가 발송된 겁니다.
이번 폭우로 전국 곳곳에서 피해가 잇따랐는데요. 강원 원주에서는 주택 3채가 침수됐고, 대구 북구에서는 담벼락이 무너지면서 주변 차량 29대가 파손됐습니다.
광주에서는 어린이집 천장이 무너지며 물이 쏟아졌고, 낙뢰로 고압전선이 끊어지면서 일대 266가구의 전기 공급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부산 수영구에서도 아파트 220세대가 정전됐고, 경북 상주에서도 나무가 쓰러져 3가구가 정전됐습니다. 이외에도 곳곳에서 정전, 침수 등 피해가 줄줄이 발생했죠.
인명 피해도 발생했습니다. 이날 오전 10시 29분경 경기 여주시 창동 소양천변 산책로를 걷던 A 씨(75)가 실종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는데요. 경찰과 소방은 인력 77명과 펌프차 등 장비 12대를 투입해 3시간가량 구조작업을 벌였으나, A 씨는 실종 지점에서 100여 m 떨어진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부산 사상구에선 오후 3시 34분경 폭우로 불어난 학장천 인근에서 3명이 급류에 휩쓸렸습니다. 60대 여성은 소방에 구조됐고, 근처에 있던 70대 남성은 학장천 다리 아래에서 소방에 구조됐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60대 여성 B 씨는 밤샘 수색에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전국에서 피해가 잇따른 가운데, 암울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진짜 장마’가 내일(13일)부터 시작된다는 겁니다.
12일 기상청에 따르면 일본 상공에 머물던 정체전선(장마전선)이 12일 밤부터 한반도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하면서 이 정체전선은 한반도로 북상하고 있는데요. 여기에 한반도 서쪽에서 다가오던 티베트고기압도 한반도를 덮으면서 두 거대 기단이 만나 세력이 더욱 강력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13일 오전 9시쯤 정체전선이 수도권부터 경상도를 관통하고 전국에 장마가 본격화할 전망이죠.
이번 정체전선은 동서로 길고 남북으로 좁은 긴 띠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정체전선 바로 아래 놓인 지역에는 강하고 많은 비가 내리겠지만, 비껴간 지역은 소강상태를 보이는 등 지역별로 강수차도 클 수 있겠습니다. 기상청은 띠 모양의 비구름이 한반도를 남북으로 오르내리면서 중부지방에 많은 비를 쏟아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중부지방을 강타한 폭우도 비슷한 모양의 정체전선이 영향을 준 바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동서로 길고 남북으로 폭이 좁은 띠 모양의 비구름 떼가 한강 이남 지역 상공에 머물면서 동작구와 서초·강남구 등에 비를 집중적으로 뿌렸죠. 당시 내린 비로 강남 곳곳이 침수됐고, 관악구에선 도림천이 넘쳐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지금까지 내린 비는 저기압과 기압골의 영향으로 일부 지역에 산발적으로 짧게 내리는 ‘기습 폭우’ 성격을 띠었습니다. 비가 짧고 굵게 내린 후 비구름대가 물러나면 곧장 폭염이 이어지는 양상이었습니다. 그러나 13일 이후부터는 정체전선이 위치한 지역에 많은 양의 비가 장시간 내릴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그간 전국 곳곳에 짧고 강한 비가 기습적으로 내렸다면, 이번엔 비구름대가 걸쳐지는 지역에 긴 시간 폭우가 내릴 것으로 전망돼 관련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이미 앞선 비로 지반이 약해진 탓에 저지대 침수와 하천 범람, 산사태, 축대 붕괴 등 호우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죠.
기상청은 비가 13일까진 전국에, 14일엔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내릴 것으로 내다봤는데요. 비는 15~17일엔 또다시 전국으로 확대되겠습니다.
기상청은 “지금까지 비는 일부 지역에 짧고 굵게 내리는 특징을 보였는데 13일 이후부터는 정체전선이 위치한 지역에는 많은 양의 비가 장시간 내리게 된다”며 “올여름 형성된 장마전선 가운데 가장 강력할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한반도로 북상하는 정체전선은 이미 일본에 큰 피해를 입힌 바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12일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 전선의 영향으로 기록적 폭우가 쏟아진 규슈 지역에서는 모두 7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규슈 북부 사가현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실종된 70대 남성이 사고 현장에서 약 6㎞ 떨어진 하천 입구 부근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이번 폭우 피해로 인한 사망자 수가 사가현 2명, 후쿠오카현 5명 등 모두 7명으로 늘어난 겁니다. 오이타현과 사가현에서는 각각 1명이 여전히 발견되지 않고 있어, 여전히 수색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당시 후쿠오카현 구루메시에는 400㎜가 넘는 비가 내리면서 관측 사상 최대 강수량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곳에는 하루 동안 420㎜ 이상의 강우량을 기록했죠. 말 그대로 ‘물폭탄’이 쏟아진 건데요. 10일 새벽부터 약 10시간에 걸쳐 비가 계속 내렸다고 합니다. 후쿠오카현과 오이타현에서는 집중 호우 관련 경계 중 가장 높은 단계인 특별 경보가 발령됐습니다. 오이타현 히타시에서는 산사태로 200여 명이 갇혔고, 야마구치현 호후시에서는 한 도로가 무너지며 주민 약 100명이 고립되기도 했습니다.
후쿠오카시의 228개 학교에 임시 휴교령이 내려졌고, 주변을 지나는 신칸센 운행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죠. 특히 이번 폭우로 피해를 본 지역 중엔 도로가 좁고 붕괴 위험이 큰 탓에 중장비 대신 수작업으로 복구작업을 해야 하는 곳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 기상청은 정체전선의 영향으로 하루 200㎜ 정도의 폭우가 더 쏟아질 걸로 예상하고 있어,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전망입니다.
오늘 오전 11시 기준 부산, 경남 거제·통영에 내려진 호우 특보가 해제되면서 장맛비는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경남 남해안 인근에만 시간당 5㎜ 정도의 비가 내리고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비가 그친 모양새인데요. 다만 대기가 불안정한 탓에 곳곳에 소나기가 내릴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소강상태는 오래 가지 않겠습니다. 13일 새벽 충남과 호남 등 서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오전 중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입니다. 14일에는 얇고 긴 비구름대가 걸쳐지는 지역에 폭우가 쏟아지겠습니다. 전형적인 장마가 비로소 시작되는 겁니다.
13~14일 전국에 50~150㎜, 제주에는 5~40㎜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비가 많이 오는 곳은 수도권에 이틀간 강수량이 250㎜ 이상, 강원내륙·강원산지·충청북부는 최대 200㎜ 이상으로 전망되는데요.
변수는 있습니다. 13일 발해만 쪽에 저기압이 강하게 발달하면 북한 쪽에 비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경우 한반도 남쪽엔 비교적 비가 적게 내리게 되죠. 또 북서쪽에서 유입되는 차고 건조한 공기의 양과 북태평양고기압 확장 여부는 정체전선의 위치에 영향을 줍니다. 정체전선은 폭이 좁은 탓에 위치가 조금만 바뀌어도 강수 집중 구역과 시점이 달라질 수 있어서, 기상청이 발표하는 예보와 기상정보를 참고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기상청은 이번 장맛비가 다음 주 중반까지 중부와 남부를 오가며 길게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강한 비와 더불어 일부 지역에서는 순간풍속 시속 55~70㎞(초속 15~20m) 안팎의 매우 강한 바람이 부는 곳도 있어 야외 활동을 자제해야겠습니다.
기상청은 “13일은 시간당 20~40㎜의 강한 비가 오는 곳이 있겠고, 14일은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시간당 30~60㎜의 매우 강한 비가 오는 곳이 있겠다”며 “14일 정체전선의 위치에 따라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매우 많은 비가 내릴 가능성이 있겠으니 피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하기 바라며 최신 기상정보를 반드시 참고하기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