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老의 찬미

입력 2021-05-12 05: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연세대학교 명지병원 외래교수

“아유, 지지. 어르신, 그거 당장 놓으세요!”

짜증에 혐오가 뒤섞인 간병인들의 야단법석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한 노인이 경단만 한 똥을 찰흙처럼 주무르고 있었다. 새삼스러운 풍경도 아닌지라 손과 주변을 잘 소독하라고 당부하고 요양원을 나섰다. 요양원에 촉탁 의사로 왕진을 다니면서 종종 마주치는 풍경이다.

처음 요양원을 방문했던 때를 떠올려본다. 교수, 고위 공직자, 운동선수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어르신들이었는데, 지금은 정신과 육체의 상당 부분이 퇴화하여 간신히 연명만 하는 분들이 허다하다. 그분들을 보면서 초기엔 우울감이 밀려오곤 했다. ‘인생무상’이란 단어를 이곳만큼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는 곳은 없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그리 머지않은 시일에 이런 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겠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왕진 중 한 노인이 편안한 모습으로 무언가를 오물거리며 음미하는 광경을 보았다. “무얼 그리 맛있게 드세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당신 자신의 배설물이 묻은 기저귀를 껌처럼 씹고 계신 것이었다. 그 순간 그분의 표정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 노인이 속세의 초월과 자유, 행복을 누리시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당시 나는 온갖 번뇌(?)에 시달리던 중이었다. 자녀 교육, 세금, 병원 운영,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진 형 소식…. 돌이켜보면 의식이란 것을 획득한 후부터 내 인생은 끝없을 것만 같은 의무와 도전의 역사를 쉴 새 없이 해결하면서 살아오고 있었다. 숙제, 시험, 취업, 결혼, 육아, 경영 등등. 그런데 그 노인은 모든 의무와 노동, 심지어 주변의 시선에서마저 해방되어 자유를 누리고 있는 상태가 아닌가!

노(老)의 상태가 고(苦)란 것은 젊은이의 시선, 즉 피상적으로 본 타인의 왜곡된 선입관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득한 순간이었다. ‘생노병사’는 삶의 한 과정이고, 그것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은 인생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요즘 몸으로 느껴가고 있다. 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K-코인 신화 위믹스…신화와 허구 기로에 섰다 [위메이드 혁신의 민낯]
  • [르포]유주택자 대출 제한 첫 날, 한산한 창구 "은행별 대책 달라 복잡해"
  • 한국 축구대표팀, 오늘 오후 11시 월드컵 3차예선 오만전…중계 어디서?
  • 연세대 직관 패배…추석 연휴 결방 '최강야구' 강릉고 결과는?
  • 제도 시행 1년 가까워져 오는데…복수의결권 도입 기업 2곳뿐 [복수의결권 300일]
  • 불륜 고백→친권 포기서 작성까지…'이혼 예능' 범람의 진짜 문제 [이슈크래커]
  • 전기차 화재 후…75.6% "전기차 구매 망설여진다" [데이터클립]
  • “고금리 탓에 경기회복 지연”…전방위 압박받는 한은
  • 오늘의 상승종목

  • 09.10 14:53 실시간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77,088,000
    • +3.99%
    • 이더리움
    • 3,177,000
    • +2.45%
    • 비트코인 캐시
    • 435,000
    • +5.07%
    • 리플
    • 727
    • +1.68%
    • 솔라나
    • 181,300
    • +4.8%
    • 에이다
    • 463
    • +0.43%
    • 이오스
    • 667
    • +2.3%
    • 트론
    • 208
    • +0%
    • 스텔라루멘
    • 127
    • +3.25%
    • 비트코인에스브이
    • 62,850
    • +5.45%
    • 체인링크
    • 14,150
    • +1.07%
    • 샌드박스
    • 341
    • +3.02%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