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돈, 그 참을 수 없는 무거움

입력 2019-11-26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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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당시 미성년이던 본인에게 법원으로부터 등기가 하나 날아왔다. 채무 변제의 책임이 있으니 출석하라는 내용이었다. 부도난 사업의 결말이었고, 3년 가까운 싸움은 그렇게 시작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가족의 사업 실패는 이어졌다. 의료기기 벤처였는데, 투자를 받고 연구개발(R&D)을 이어갔으나 결국 돈이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때부터 투자, 벤처, 개발 등 돈과 관련된 단어를 들으면 삐딱해지는 버릇이 생겼다.

최근 몇 달간 코스닥 상장을 준비하는 업체 대표 및 관계자들을 연달아 만났다. 아무래도 제약바이오 업종이 많았다. 대화의 주제는 돈이었다.

"저희는 우려하는 시각과 달리 자체적인 매출이 있어 이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습니다."

올해 내내 화두였던 임상 실패와 맞물린 제약바이오 리스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실제로 암 치료제 등을 개발 중이지만 누군가는 비누를 팔고, 누군가는 선크림을 팔고 있었다. 단 1억 원의 수익이 남을지라도 R&D에 쓸 수 있음에 다행스러워했다.

한 대표는 이러한 외도(?)를 두고 다소 머쓱해 했지만, 이건 민망한 일이 아니었다. R&D 하나만 보고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는 회사들과 달리, 적어도 돈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현재의 자립성이 회사의 존속으로 이어짐을 강조했다. 거대한 투자를 받고, 이후 임상이 성공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나리오다. 그러나 이 한 가지 결말만 보고 전력 질주를 하기엔 위험성이 크다. 신약의 경우 후보물질 하나를 찾는 데만 10년에서 17년까지도 걸린단다.

이 말에 동의한다. 결코 투자와 R&D가 쓸모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얘기이기에, 그것만 바라볼 순 없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제약바이오의 거품이 서서히 빠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더는 망상만으로 투심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적을 봐야 한다고 했다. 실적이 없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환경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현장에선 이처럼 막연한 개발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타 회사와의 차별성으로 수익성을 꺼내 드는 요즘이다. 수십, 수백 억 원의 적자가 가치 투자의 훈장처럼 여겨지던 시절은 지났다.

현재 연말 연초를 목표로 제약바이오 업체 여럿이 IPO를 준비 중이다. 이들 역시 미래의 청사진과 함께 어느 정도 현실 감각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돈이라는 거, 돌고 돈다지만 없을 땐 자기 스스로가 돌아버린다. 자금 조달과 관련해 기업들은 기초체력을, 투자자들은 현실성을 챙길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외부에서만 R&D 자금을 바랄 순 없다." 이게 현장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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