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통했던 재벌 총수의 양형 공식이다. 현행법상 3년 이하의 징역은 그 집행을 유예할 수 있다. 유죄는 인정되지만 결국 석방한 셈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박용오·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등이 과거 유사하게 석방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최근 법원이 기업인들에 더욱 엄정한 잣대를 대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공식은 깨졌다.
법원이 재벌가에 대한 처벌 기조가 눈에 띄게 바뀐 것은 2014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이다. 조 전 부사장은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항소심에서 항로변경 혐의가 무죄로 판단되면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되면서 석방됐고,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비슷한 시기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은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최근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여파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월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역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됐다. 이후 약 1년간 복역하다 항소심에서 일부 유무죄 판단이 뒤집혀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현재 대법원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횡령·배임, 분양가 부풀리기 등의 혐의로 1심 재판을 받는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2월 구속기소됐다.
법원은 구속 중 합리적 사유가 인정될 경우 석방해주는 보석 결정에 있어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신 회장은 6월 25일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 앞서 경영권 방어를 위해 보석 신청을 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주총일인 지난달 29일까지 인용을 미루면서 사실상 불허됐다.
당시 신 회장 측은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에 이사 해임 안건이 상정된 만큼 경영권 방어와 그룹 안정을 위해 보석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재계 5위 그룹의 총수란 이유로 더 특혜를 받아서도 안 되고, 그런 이유로 더 엄격하게 기준을 적용받아서도 안 된다”며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중근 회장도 5월 25일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보석 신청을 했다. 재판부는 약 두 달 만인 16일 보석 심리를 했고, 이틀 후인 18일 허가했다.
검찰이 “석방되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보석 불허를 강하게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당뇨, 고혈압 등 지병으로 인한 이 회장의 건강 악화에 더 무게를 뒀다. 이 회장은 구속된 지 5개월 만에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