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의 햇살과 바람] 대지(大地)의 여자, 화가 이성자

입력 2018-03-3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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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여자가 있었다.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그럼 그렇고 말고, 그것은 절대로 현실은 아니라고, 세상에 도무지 상상으로도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지는 그런 여자, 그것은 누군가가 만들어 낸 소설이라고 우기고 싶은 결코 믿기지 않는 여자가 있었다. 이성자(李聖子). 그녀가 받은 이름은 평범하지만 그녀가 쌓은 이름은 눈부시고 위대하다.

1951년 전쟁이 나라를 바닥부터 뒤흔들어 모두 가난과 허기에 비틀거릴 때 그녀는 이혼을 하고 세 아이를 남긴 채 홀로 프랑스로 떠났다. 프랑스가 어딘가? 바로 이 대목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아니 심장이 멎을 것 같지 않은가. 아마도 한 달은 배를 타고 다시 배를 타고 그렇게 불안과 두려움을 껴입고 드디어 도착한 프랑스에서 자신이 꿈꾸던 패션을 배우기 시작했다.

디자인과 색감을 고르는 능력에 사람들은 그림 쪽으로 길을 권했고 그녀는 1953년 아카데미 드 라그랑 쇼미에르에서 회화 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한국을 떠날 때 막내가 다섯 살이었으니 그 아이가 걸려서도 왔던 길을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올 법도 했건만 그녀는 이 악물고 죽을 고비를 넘어서며 1958년 라라 뱅시 화랑에서 개인전을 여는 기적을 보였다.

한국에는 그런 여자가 있었다. 물론 나혜석도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지만 나혜석은 남편과 안전하게 파리로 갔던 게 아닌가. 그 후 홀로인 그녀는 몇 차례 해외에서 개인전을 열고 1965년에 당당한 모습으로 한국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전시회를 연다. 이미 다 성장한 세 아들을 만난 시기도 이때였다.

▲이성자 화가
▲이성자 화가
어머니는 자신들을 떠났지만, 세 아들은 누가 봐도 훌륭하게 자랐다. 엄마 없이 자란 마음 약한 아들들이 아니었다. 큰아들 용석은 기자가 되어 엄마가 계신 파리에서 특파원을 두 번이나 하며, 엄마와 같이 세계적인 화가들과 악수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세계적인 화가로 거듭났으며 미국을 위시한 여러 나라에 자신의 예술혼을 심어 놓았다. 그리고 2009년 그녀는 91세로 눈을 감았다. 어머니의 위대한 예술정신의 발자국을 찾아 나선 막내아들 용극은 어머니의 작품을 하나씩 사 모으기 시작했고 압구정에 이성자 미술관을 열었다. 1918년 경남 진주 태생인 그녀는 고향에 이성자 미술관을 만들게 했다. 이달 22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탄생 백주년 기념전시회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이 열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예술을 시대적으로 따라가 볼 수 있었다.

이 전시회는 덕수궁관의 ‘신여성 도착하다’전을 시작으로 여성 미술가에 대한 집중 조명을 위한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전시 가운데 하나로 이루어졌다. 동양과 서양, 정신과 물질, 자연과 인공, 삶과 죽음 등 대립적인 요소의 조화를 통해 상생할 수 있는 새로운 창조의 세계가 그녀가 보여주고 싶은 예술정신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 이성자! 모든 것을 던지고 모든 것을 얻은 여자라고 부르고 싶다.

어린 나이로 전쟁 중에 훌훌 떠나 버린 어머니의 작품을 들여다보는 아들들을 먼 빛으로 바라보면서 헤어진 사랑이 주는 지독한 그리움 또한 저 그림 속에 배어들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며 그림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1960년대의 그림을 작가 스스로 ‘여성과 대지’로 분류했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녀는 떠난 것이 아니라 아들들이 살고 있는 같은 땅의 어느 먼 거리쯤에 존재했던 것이다. 전시는 7월 29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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