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결과, 누군가 약국 등에 진열된 타이레놀에 몰래 청산가리를 투입한 것으로 밝혀졌고, 미국 식품의약국은 시카고 지역에 배포된 타이레놀의 회수를 권고했다. 단순한 리콜로 끝날 뻔한 이 사건은, 제조사가 취한 그 이상의 조치로 인해 주목받게 되었다.
제조사는 병원·약국과 광고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사고 사실을 알리고, 1억 달러 상당의 타이레놀 유통량 전체를 회수하였다. 또한, 아예 이물질이 들어갈 수 없는 새로운 포장지를 개발하여 재출시하였다. 이러한 노력 끝에 35%에서 7%로 급락했던 시장점유율은 원래 상태를 되찾게 되었다. ‘윤리 경영’의 사례로 잘 알려진 이 일화는,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자리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신뢰가 기업의 흥망성쇠를 결정한다는 것 또한 말해주고 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도 비슷한 신뢰 위기를 겪고 있다. 9월 28일 위원 면담 과정 기록 의무화, 직무 관련성이 있는 경우 사적 접촉 금지 등 ‘공정위 신뢰 제고 방안’을 마련해 발표하였음에도, 퇴직자나 대형 로펌 변호사의 영향력 행사 가능성에 대해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사건 처리의 공정성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고 공정위 신뢰 회복 프로그램이 보다 실효성 있게 작동되게 하기 위해서는 공정위를 출입·접촉하는 이해관계자들이 윤리에 맞지 않는 행동을 스스로 하지 않는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공정위가 정부 기관 최초로 추진하기로 한 것이 바로 ‘외부인 출입·접촉 관리 강화 및 윤리 준칙 도입’이다.
우선 빈번한 방문 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는 대형 로펌 변호사, 대기업 임직원, 공정위 퇴직자 등은 인적사항 등을 등록한 후 공정위를 방문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그리고 등록 대상 외부인은 조사 정보 입수 시도와 같이 비밀 엄수와 관련한 준수 사항, 사건 관련 부정한 청탁 금지 등 윤리 준칙(code of ethics)을 준수해야 한다. 공정위 직원들도 등록된 자와 사무실 내·외부에서 만나거나 전화·SNS 등을 통해 접촉할 경우 상세 내역을 보고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러한 방안들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서, 등록요건에 해당됨에도 등록하지 않는 외부인과는 사건 절차규칙상 인정되는 전원회의 참석 및 진술조사 외 모든 접촉을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또한, 윤리 준칙을 준수하지 않은 자의 경우 공정위 직원·간부로 하여금 1년간 모든 접촉을 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신뢰를 잃은 기업은 매출이 떨어지고, 어쩌면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 정부 기관이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면 존폐의 위기를 맞아 기관이 추구하는 가치 자체가 몰각될 수 있다. 공정위가 다소 엄격해 보일 수 있는 강도 높은 신뢰 회복 방안을 추진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즉,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행위의 음성화와 규제 강화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우리 사회의 미래 발전 방향을 공정위가 한발 앞서 실천해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올해 안에 세부 절차를 담은 공정위 예규를 마련하고 내년 1월부터 즉시 시행할 예정이다. 이를 출발점으로 우리 사회가 투명한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