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팡팡] 뜨거웠던 6월 ‘넥타이 부대’

입력 2017-06-09 16:25 수정 2017-06-0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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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민주화 선봉에 섰던 그들










[카드뉴스 팡팡] 뜨거웠던 6월 ‘넥타이 부대’

‘넥타이 부대’란 말의 원조를 아십니까?
화이트칼라의 상징인 ‘넥타이 부대’.
그러나 그 원조는 1987년 6월 항쟁 민주화의 선봉에 섰던 ‘투쟁의 무리’입니다.

1987년. 민주화를 외치는 학생들의 6월 항쟁 본거지였던 명동성당.
당시 이 일대인 명동, 을지로, 광교, 남대문 지역은 한국의 금융가로,
‘넥타이 부대’ 인 샐러리맨들이 많은 곳이었죠.

“점심시간이면 명동성당에 들러 학생들에게 컵라면과 간식을 건넸다”
“5시에 퇴근하면 아직 해가 중천이라 학생들과 시위에 합류하기 좋았다”
“경찰에 매 맞는 학생들을 감싸줬다. 그들은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에게 함부로 하지 못했다”

“나라가 잘못되는 데 책상앞에 앉아 있을 수만은 었었다”
“시위할 때면 양복입고 넥타이 맨 채 최루탄 피해 도망다녔다”
“회사엔 외근한다고 나가서 시위에 참가한 적도 많았다”

“독재 타도! 호헌 철폐!”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민주화에 대한 목소리는 높아져만 갔습니다.
6월의 뜨거운 아스팔트 만큼이나 거리에 쏟아져나온 넥타이 부대의 함성은 열망으로 가득찬 뜨거움이었죠.

학생과 지식인, 성직자 중심의 기존 반정부 세력에
소위 중산층이자 엘리트층인 이들이 독재정권 타도 선봉에 서면서 민주화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넥타이 부대는 6월 항쟁을 이끄는 중심세력으로 떠올랐습니다.

6월 항쟁이 가져온 정치와 사회의 민주화.
이에 앞장선 넥타이 부대는 여전히 이 시대에도 사회 변화의 한 무리로 역할하고 있습니다.
지난 정부 국정농단 촛불집회에서도 ‘시민혁명’의 한 축으로 위력을 보여줬습니다.

시대를 고민하고 행동하는 넥타이 부대.
1987년의 거리에서나
2017년의 거리에서나
그 뜨거운 가슴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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