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보호무역, 자유무역

입력 2007-12-03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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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이 끝나자 세계는 무역공백 상태가 됐다. 선진국은 선진국대로, 후진국은 후진국대로 자국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려웠다. 수출여력이 있는 일부 선진국들은 수출하려니 수입수요가 별로 없어 물건을 팔기 어려웠고, 후진국들은 수입할 돈이 없어 물건을 사올 수 없었다. 더구나 전후 세계 무역질서를 기준 삼을 국제적인 무역표준이 마련되지 않아 선후진국 모두 교역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마련된 것이 세계무역질서 확립을 위한 국제 협정인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제였다. 1947년 체결된 가트는 선진국 간의 무역질서를 재확립하는 한편 후진국 교역에 관해서는 일정한 혜택을 주는 세계무역 협정이었다. 즉 가트 협정으로 전후 세계무역 질서가 확립되고, 선진국들은 후진국에 대해 무역혜택을 용인해주었다. 후진국들은 경쟁력이 취약한 자국 시장을 보호할 수 있었다. 후진국의 보호무역과 관세 장벽 등이 이래서 용인됐다.

그렇게 50여년이 지났다. 80년대가 되고 90년대에 이르자 많은 후발국들이 세계 무역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다. 한국은 그런 나라 중의 하나다. 후발국들의 제품들이 선진국 제품을 위협하고 세계시장을 잠식했다. 선진국 제품들은 점차 시장에서 물러나거나 경쟁력을 잃어갔다. 상황이 이에 이르자 선진국들은 더 이상 후진국의 보후무역 장벽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그래서 이뤄진 것이 1995년부터 발효된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이다. 이 협정의 요체는 세계무역질서를 21세기형으로 선진화하고 보호무역주의를 철폐하는 것이었다. 선진국들은 더 이상 후진국들의 보호무역주의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세계 무역질서가 전후 가트체제에서 우루과이 라운드 체제로 바뀜에 따라 후발국들이 국내 시장을 보호하기가 어려워 졌다. 이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자유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됐다.

사실 따지고 보면 97년의 IMF 외환위기도 결국 우리 제품의 경쟁력 열위가 가장 큰 근본원인이었다. 이에 따른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에 의한 회환부족이 IMF사태를 불러온 동인이었다. 지금처럼 무역수지가 흑자를 보였다면 IMF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 워낙 무역적자 기조가 장기간 지속된데다 우리 기업과 정부가 자유무역주의로 이행하는 세계적인 무역추세를 제대로 읽지 못해서 그런 사태를 맞지 않았나 생각된다.

며칠 전 무역협회가 발표한 보도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의 무역규모(전망치)는 수출 3천6백70억달러, 수입 3천5백20억달러로 총 7천1백90억달러에 달한다. 이같은 무역규모는 세계 11번째에 해당하는 무역규모다. 정말 대단한 실적이고 성장이다. 특히 수출의 경우 지난 71년 수출 10억달러에 이어 88년 1천억달러, 2007년 3천6백여억 달러를 달성해 그야말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내수시장이 작은 나라는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대외무역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왜냐면 국내서 대량생산되는 제품을 내수시장이 다 소화하지 못하는 관계로 수출이나 수입을 통해 잉여생산분 또는 부족분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수 시장이 적절한 규모가 되려면 대체로 그 나라 인구 1억명 이상, 적절한 크기의 국토, 그리고 상당한 소비수준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인구 5천만에 국토는 분단상태고, 내수시장이 경제규모에 비해 적은 편에 속한다. 그래서 우리 기업들은 판로를 확대하기 위해 수출입에 사활을 건다. 자연히 우리 경제의 대외무역의존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지난 70년 34.8%이던 대외무역의존도가 98년에는 65.2%, 그리고 2004년에는 70.3%로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내수시장 성장률보다 앞서간다는 의미다. 생산은 크게 느는데 내수시장은 더디게 확대되니 자연 대외무역의존도가 높아진다.

우리나라의 대외무역의존도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무척 높은 편이다. 2004년 독일의 60.5%, 영국의 37.2% 등에 비해서도 높은 편이지만, 우리의 주요 교역 상대국인 미국의 20.0%, 일본의 21.8%에 비하면 엄청 높다. 즉 주요 선진국들은 내수시장이 커서 그 나라 경제가 대외 무역에 의존하는 정도가 20 - 60% 정도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경제는 내수시장이 작아 수출입에 70% 이상을 의존해야만 한다.

우리나라 경제의 70% 이상을 수출과 수입에 의존하지 않으면 우리 국민 경제는 곧바로 파탄난다. 쉽게 말하자면 만약 수출입이 중단된다면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실업자가 되고 전 국민의 개인 소득도 지금보다 70% 이상 줄어든다는 얘기다. 물론 그 전에 기업 도산이 줄을 잇고 나라 경제는 완전 침몰하겠지만 말이다.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이처럼 높다는 것은 바꿔 말해 우리가 수출과 수입을 확대하지 않고서는 경제적 삶을 계속해 갈 수 없음을 말한다. 수출과 수입을 확충해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우리의 수출입 방향을 세계적인 무역질서에 맞춰 나가는 게 중요하다. 우리 제품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지금 세계의 무역질서 추세는 자유무역주의다. 따라서 자유무역주의를 추구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보호무역주의나 관세 장벽 등 시장보호적인 조치를 취한다면 그 다음은 나라 경제가 파산하는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교역문제에서 취할 조치는 당연히 자유무역 추세다. 20세기 세계무역질서에 관한 헌법 역할을 하는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을 준수하고 그 내용에 따라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하고 수입하는 길이 우리가 살 길이다.

그런데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유무역주의가 마치 무슨 저승사자나 되는 것처럼 오인하거나 나쁜 걸로 인식하고 있는 게 문제다. 자유무역의 가장 큰 혜택과 이득을 보는 우리나라가 자유무역주의를 사갈시하는 하는 건 그야말로 난센스다. 우리가 추구하고 살아갈 길은 자유무역주의를 충실히 따르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미FTA협정 체결 등 대외자유무역협정 체결 움직임은 당연한 시대적 요구이자 올바른 정책방향이다.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 나라 경제가 외국에 속박되거나 빼앗긴다고 주장하는 건 지나친 억측이요 왜곡된 인식이다. 연초에 “한미FTA협정을 체결하려면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 외치거나 FTA반대 단식에 들어간 정치인들이 있다. 과연 그들이 올바른 경제인식을 가지고 있고 세계정세를 정확하게 읽을 능력이 있는지 정말 의심스럽다. 이들은 지난 경선에서 모 정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하거나 하려다 중도에 포기한 사람들이다. 만약 그들이 소속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 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면 우리나라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되었을지는 보나마나 뻔하다.

시장을 열어서 피해보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주로 일부 농민이나 취약 산업이 그들이다. 이들에게는 정부가 사후대책을 제대로 마련하거나 전업 등 보완책을 순차적이고 중장기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그래서 시장개방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또 국민들의 인식도 바꿔져야 한다. 가장 시급한 인식전환은 농업분야다. 농촌은 농업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농촌 = 농업’이라는 등식관계의 인식을 ‘농촌 ≠ 농업’이라는 부등식 관계의 인식으로 바꿔야 한다. 농촌에서 꼭 농업을 해야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농촌에서 관광도 하고 제조업도 해야 한다. 또 농업을 하더라도 특용작물도 하고, 개인영농이 아니라 기업농을 해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이런 것들이 자유무역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취해야 할 올바른 생활방식이자 시대요구다.

나라가 발전하고 우리 삶의 양식과 수준이 향상되려면 이처럼 세상을 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백여년 전 우리나라 지도층이 무능에 빠져있고 백성들마저 편견과 아집에 빠져 세상을 제대로 읽을 줄 몰라 나라를 망친 전철을 우리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겠다. 조선조 말에 아둔한 위정자들이 둘러대던 ‘위정척사(衛正斥邪)'의 외침을 이제는 두 번 다시 듣지 않기를 소망해본다.

이타임즈 최재완 편집인 [choijw47@e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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