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12월 4일 공진항-개성 거상의 아들로 대규모 농장 일군 유럽 유학파

입력 2016-12-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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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명 편집부 차장 dmjang@

1949년 주 프랑스 초대 한국 공사로 발령받은 공진항(孔鎭恒, 1900. 12.4~1972. 5.13)은 그 이듬해 농림부 장관으로 임명돼 귀국, 6개월간 장관직을 수행하고 퇴임했다.

그는 개성의 거상 공성학(孔聖學, 1879~1957)의 둘째 아들로 일본 와세다(早稻田) 대학 영문과를 나와 파리와 런던에서 공부한 유학파다. 그의 아버지는 한학을 배워 시문에 능통했고 성균관 부제학에 올랐으며, 기업의 성패보다는 민족자본에 의한 향토 개발을 주장하고 일본인들의 자본침략을 반대한 지사형 민족기업가였다.

공진항은 유럽 유학 후 귀국길에 시베리아철도로 만주를 거쳐 귀국하는데, 이때 만주에 대규모 농장을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가업을 정리해 만주 진출을 꾀했다. 당시 일본인들은 만주척식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농지와 영농자금을 보조받았으나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들이 소작으로 삶을 연명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그는 만주의 농장지를 답습하고 요하 연안에 오가자농장(후에 고려농장으로 개칭)을 건설했다. 하지만 규모가 너무 작아 만몽(滿蒙)산업주식회사를 스스로 설립해 사장에 취임했다.

공진항은 대학에서 문학, 사회학을 전공했지만 한국 농업기술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선조 때부터 개성에서 거대한 인삼밭을 경영해온 전통에서인지 영농에 전념했던 것이다. 전통적인 삼포(蔘圃)경영에서 시작된 그의 가업은 근대적 대농장으로 전개됐으며 후에 경기도 양주 목축농장으로 이어졌다.

공진항은 퇴임 후 사슴, 유우, 산양, 칠면조, 닭 등을 기르면서 손수 젖도 짜고 교배도 시켰다. 아침운동 후 항상 냉수마찰을 한 그는 ‘돈은 아껴서 크게 쓰라’는 것이 생활신조였으며 술은 가끔씩 한두 잔 마시고 담배는 한 두 개비만 피울 정도로 절약했다고 한다. 또한 누가 요릿집에 초대를 해도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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