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밤이 없는 금융당국

입력 2016-10-12 10:36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정다운 자본시장부 기자

‘낮에 잃은 것을, 밤이여, 돌려다오’

괴테의 파우스트는 깊게 읽지 않았지만 ‘밤이 곧 선생’이라는 저 구절의 가르침은 생생하다. 존경하는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이 자신의 칼럼과 인터뷰에서 종종 언급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 역시 낮에 했던 부끄러운 일을 밤이 돼서야 겨우 달랜 적이 많아서다.

선생은 자신의 저서에서 이를 인용하면서 낮은 이성의 시간,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라고 칭했다. 또 밤은 시인이 낮에 겪은 분열을 치유하고 봉합해 새 언어를 써내는 회복의 시간이라고 했다.

특히 우리의 낮이 이론과 법, 제도를 동력으로 무분별하게 질주할 때, 반성하는 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선생은 민청학련 사건으로 입국이 금지됐던 한 교수가 수십 년이 지나 겨우 한국에 들어왔지만 정부는 여전히 ‘낮의 일’에만 골몰했다며 탄식했다. 반성은커녕 그를 국정원으로, 검찰청으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이제는 이름도 생소한 ‘전향서’ 따위를 써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목이 마른 것처럼 ‘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은 이번 월요일(10일) 아침 금융위원회 기자실에서였다. 언론에 성의껏 대응하고자 매월 금융위원장이 직접 새로운 제도와 이슈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당연히 한미약품의 ‘늑장공시’ 사태로 불똥이 튄 공매도 공시제도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사고가 터졌을 때 (급하게 제도를 땜질하지 않도록) 인내가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시장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공매도 수량 공시는 시장을 해친다”고 호소했다. 6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도, 올 초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손실 위기가 닥쳤을 때도, 더 멀리는 동양사태 때도 반복했던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공매도로 시장에 충격을 준 것은 기관들인데 10년이 다 돼가도록 왜 개인의 공매도 접근만 제한적인지, 대량 보유자의 인적정보를 내보여 비난의 제물로 삼기보다는 일정 수준 이상 공매도 잔고를 공시하는 것이 투자자 간 균형을 맞추는 일이 아닐지, 신앙처럼 지키겠다는 시장 자체가 기울어져 있는데 바로잡기 위한 반성과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장을 지키자!’, ‘국가를 수호하자!’라는 구호를 외치기는 쉬워도 밤의 말을 하는 정부를 만나기는 아직 어려운 듯하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한국, 공급망 확보 뛰어들었지만...한계도 뚜렷 [기후가 삼킨 글로벌 공급망]
  • "이러다 다 죽어"…'불법 사이트' 전쟁 선포한 기업들 [K웹툰 국부 유출下]
  • "따로, 또 같이"…활동반경 넓힌 블랙핑크, 다음 챕터는? [이슈크래커]
  • 단독 군, 안전불감...내진설계 반영 탄약고 고작 19% [2024 국감]
  • 시중은행도 예·적금 금리 인하…'자금 대이동' 시작되나
  • [날씨]일교차 크고 최저기온 '뚝'…아침 최저 3도
  • 악플러 고통 호소했던 제시의 2차 사과문 "수천 번 수만 번 후회"
  • 단독 “루카셴코, 방북 가능성 커져”...북한, 친러 벨라루스와도 협력 강화
  • 오늘의 상승종목

  • 10.23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2,387,000
    • -0.55%
    • 이더리움
    • 3,498,000
    • -3.21%
    • 비트코인 캐시
    • 482,100
    • -2.25%
    • 리플
    • 729
    • -0.95%
    • 솔라나
    • 237,700
    • +2.99%
    • 에이다
    • 484
    • -3.39%
    • 이오스
    • 650
    • -2.55%
    • 트론
    • 222
    • +0.45%
    • 스텔라루멘
    • 132
    • +0.76%
    • 비트코인에스브이
    • 64,800
    • -2.63%
    • 체인링크
    • 15,700
    • -4.85%
    • 샌드박스
    • 367
    • -4.92%
* 24시간 변동률 기준